
UBC가 2012년 초연한 맥밀런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4년 만에 다시 올린다. 22∼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다. 맥밀런은 드라마 발레의 거장으로,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UBC는 이번에 아시아 최초로 맥밀런재단의 허가를 받아 무대와 의상 세트를 직접 제작한다. 맥밀런이 선호한 폴 앤드루스가 디자인을 맡았다. 게다가 전설적 줄리엣 알레산드라 페리와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무용수 에르만 코르네호도 초청돼 화제다. 주목할 점은 또 있다. UBC의 외국인 단원 4명이 주요 조연으로 관객에게 눈도장을 찍는다. 예브게니, 알렉산드르와 함께 머큐시오 역의 이고르 콘타레프(23), 벤볼리오를 맡은 샤오쿤(27)이 극의 중심을 받친다. 13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이들 외국인 단원 4인방을 만났다. 칼에 베인 상처를 염려하자 이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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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주요 배역을 맡은 외국인 단원 예브게니 키사뭇디노프, 샤오쿤, 알렉산드르 세잇칼리예프, 이고르 콘타레프(왼쪽부터)는 “원작의 이야기를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UBC 제공 |
“무용수는 모두 고통을 안고 살죠.”(예브게니)
고통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국적 불문 무용수의 공통점인 듯했다. 이들은 “실전용 칼로 연습하는 건 무섭기보다 위험하다”며 “시장 근처에서 싸우다보니 상인, 행인, 구경꾼이 많아 저와 상대방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다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칼싸움보다 어려운 점은 ‘자연스러운 연기’다. 박자마다 동작이 정해진 고전 발레와 달리 이 작품은 음악에 맞게 물 흐르듯 연기해야 한다. 알렉산드르는 “동작을 자기 걸로 소화한 뒤 다 잊고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돼 춤춰야 하는 점이 가장 어렵다”며 “연습하면 할수록 안무와 연기, 음악이 들어맞는 걸 보면서 맥밀런의 천재성을 느낀다”고 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는 장면은 티볼트와 머큐시오의 싸움, 이어지는 티볼트와 로미오의 결투다. 단순히 검과 검을 부딪치는 게 아니라 티볼트가 약이 올랐다가 화를 폭발시키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전해야 한다.
이들 4인방은 국적도 경력도 다양하다. 예브게니는 카자흐스탄 출신 맏형이다. 2002년부터 2년간 카자흐스탄 국립 오페라 발레단 단원으로 일한 뒤 2004년 한국 선생님과 인연을 맺어 UBC에 왔다. 2014년 러시아 야콥손 발레단에서 1년쯤 외도한 뒤 지난해 다시 UBC에 입단했다. 이고르는 러시아 출신이다. 북구 특유의 서늘한 외모와 달리 따뜻하고 성실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야콥손 발레단에서 예브게니를 통해 UBC를 알게 됐다. ‘심청’을 포함해 다른 발레단보다 풍부한 UBC의 레퍼토리에 끌려 올해 3월 한국에 왔다. 그는 “김치와 언어장벽은 힘들지만 한국이 좋고 앞으로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알렉산드르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한국어를 포함해 러시아어, 영어, 일본어 등 7개국어를 알 정도로 언어 재능이 뛰어나다. UBC에 있는 외국·한국인 친구들을 통해 발레단의 존재를 알게 됐다. 2014년 이원국발레단을 거쳐 올해 UBC에 입단했다. 그는 “매일 김밥만 먹으면 질리듯 무용수들은 늘 새로운 걸 원한다”며 “UBC는 고전에서 드라마 발레까지 레퍼토리가 풍부하다”고 했다. 중국인인 샤오는 유병헌 예술감독이 현지에서 연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UBC에 왔다. 그는 “한국 음식과 생활에 잘 적응했다”며 “한국에서 더 이루고 싶은 것도 없고 UBC가 제일 좋다. ABT에 기회가 있어도 안 간다”고 농반 진반으로 말했다.
이번 작품은 이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알렉산드르는 “제가 티볼트를 한다고 하니 한국·외국에 있는 발레하는 친구들이 다들 ‘좋겠다, 나도 맥밀런 안무를 추는 게 꿈’이라며 부러워한다”며 “이번에 주요 역할을 맡게 돼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예브게니 역시 “이번 작품은 제게 아주 큰 경험이고 많은 걸 배우고 있다”며 “다 끝내고 나면 아티스트로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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