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재를 아는 배익기(56)씨가 상주본 반환에 대한 대가로 1000억원을 요구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했다. 31일 그는 상주본 반환 시 박물관 명예 관장 자리와 여타 예우를 해주겠다는 정부 측 제안에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 제대로 된 진상 조사 후에 감정 평가를 받겠다”며 “돈과 명예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운 돈도 5분의 1은 준다”
배씨는 상주본에 엮인 10년 이상의 소송 때문에 결혼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를 물려줄 후손도 없어 양보안을 제시했다고 했다.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소송 십몇 년 하니까 결혼도 못했다. 대대로라는 말도 좀 웃기는 말이 돼버렸다. 그렇다고 나도 모르는 자식이 어디 있을 리도 없을 것이고”라며 “그렇다고 (상주본을 바로) 주면 칭찬할 사람도 없이 당연히 줬다는 식으로 여겨질 것 아닌가. 그래서 양보안을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운 돈도 5분의 1까지 받을 수 있다는데 나는 (상주본을) 헌납하고 10분의 1만 받겠다는 그런 얘기를 했던 거다”라고 말했다.
상주본은 2008년 7월, 배씨가 집을 수리하던 중 국보 70호인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내용 중 일부가 없어졌지만 상태가 양호했고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관한 연구자 주석이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 ‘그 재산가치가 1조원’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를 근거로 배씨는 줄곧 그 10분의 1인 1000억원을 반환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배씨는 상주본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발견 당시 완벽한 보존 상태가 아니었던 상주본은 설상가상 2015년 3월 배씨 집에 불이 났을 때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는 “제가 알기로는 이게 완전한 본으로는 총 33장이다. 그런데 책장 세보는 사람이 누가 있나”라면서도 “훈민정음 간송본처럼 상주본도 어차피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라고 현 상태가 좋지 않음을 내비쳤다.
배씨는 줄곧 상주본이 29엽(장) 정도 남아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항간에 13엽이라는 소문이 있다’는 의혹에 “13엽은 넘는다”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검증은 거절했다.
◆“돈과 명예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날 방송에서 배씨가 상주본을 국가에 반환하는 대가로 국립한국박물관 명예관장 자리와 한글세계문화재단에서의 적절한 예우 등을 제안했다. 안 의원은 배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문화재청 사이에서 적극 중재하겠다고도 밝혔다. 상주본의 가치 판단을 위한 감정 평가도 제시했다.
하지만 배씨는 소유권 무효화 소송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진상 조사를 해야) 내가 (상주본을) 소유하든지 감정 평가를 받든지 헌납을 하든지 그게 결정이 나올 거 아닌가?”라며 감정평가는 그 이후라고 못 박았다.
이어 “원하는 게 돈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라는 안 의원의 질문에 배씨는 “둘 다는 누구나 다 원하는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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