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이 30일 오후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4차 공판에서 증인신문이 이뤄지기 전 모두진술을 통해 심정을 밝혔다.
머리를 풀어헤친 고씨는 연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 뒤 수기로 직접 작성한 8페이지 분량의 의견진술서를 10분가량 울먹이며 읽었다.
고씨는 "저녁을 먹은 뒤 아이가 수박을 달라고 했고, 칼로 자르려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제 가슴과 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며 다급하게 부엌으로 몸을 피했지만 전 남편이 칼을 들고 쫓아왔다고 진술했다.
고씨는 "(전남편은) '네가 감히 재혼을 해! 혼자만 행복할 수 있냐'고 말하며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후 몸싸움 과정에서 고씨는 "칼이 손에 잡혔으며 눈을 감고 그 사람을 찔렀다. 현관까지 실랑이를 벌였고 그 사람이 힘이 많이 빠진듯 쓰러졌다"고 우발적 범행 과정을 설명했다.
고씨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 밤새 피를 닦았다. 한 순간에 성폭행과 죽음이라는 순간을 겪게 돼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미친짓이었고 반성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고씨는 "제가 저지르지 않은 죄로 처벌받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방청석에선 탄식과 야유, 고함이 쏟아졌다.
유족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거짓말하지 마!"라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고씨는 지난 16일 열린 3차 공판에서 1차 공판 때 하지 않았던 모두진술을 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고씨가 거듭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자 본인이 직접 의견서를 수기로 작성해 오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고씨는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 10분부터 9시 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혐의는 살인과 사체손괴·은닉이다.
한편 전 남편을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구속기소)의 의붓아들 의문사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 고씨가 의붓아들을 살해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사건을 검찰에 보냈다.
청주 상당경찰서는 의붓아들 A(5)군이 잠을 자는 사이 몸을 눌러 숨지게 한 혐의(살인)로 고씨를 입건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30일 송치했다.
경찰은 고씨와 그의 현재 남편 B(37)씨를 A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살인과 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입건해 수사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6개월 간의 수사 자료를 토대로 전문가·프로파일러의 자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결론을 냈다"며 "혐의 내용과 증거 등은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B씨의 과실치사 혐의는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지난 7월 B씨의 모발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를 받았다.
고유정은 지난해 11월 B씨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첫 번째 아이를 유산한 뒤 불면증을 이유로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씨가 수면제를 처방받은 적이 없고, 아내에게 수면제를 달라고 해 복용한 적도 없다는 점을 토대로 고유정이 음식에 수면제를 몰래 타서 먹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A군이 숨진 날 새벽 고씨가 깨어있었던 정황도 확보했다.
고씨는 사건 당일 잠을 자지 않고 살해 방법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 고유정은 사건 당일 자정께 아파트 커뮤니티에 아이들을 위한 풍선 아트와 페이스페인팅 놀이를 제안하는 댓글을 남겼다.
사건 당일 오전 7시쯤 휴대전화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매한 것도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 A군 사인은 '압착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됐다.
사망 추정 시각은 지난 3월 2일 오전 5시쯤로 10분 이상 전신이 강하게 눌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국과수 소견이다.
발견 당시 A군은 얼굴은 침대 메트리스를 향하고 있었고, 입에 혈흔이 남아있었다.
경찰은 누군가 A군의 얼굴을 메트리스로 향하게 한 뒤 압박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고유정은 "사건 당일 남편과 아들이 자는 다른 방에서 잠을 잤으며 아침에 깨어보니 아들이 숨져 있었다"며 "왜 사망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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