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설 연휴를 끝내고 ‘실용주의 성장론‘을 앞세워 정책 추진에 나선다. 탄핵 정국에서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동시에 조기 대선 국면을 앞두고 중도층을 끌어안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되지만 노동계와 전통 민주당 지지층의 반발을 뛰어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30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내달 3일 반도체산업 종사자의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에 예외를 두는 내용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관련 정책 토론회를 주재한다. 당은 토론회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사이의 균형을 위한 것으로, 이 대표가 토론회 좌장을 맡아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산업적 요구와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라는 사회적 가치를 조화롭게 충족시킬 방안을 모색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그간 고소득 전문직 근로 시간 규율 적용 제외 등 노동시간 관련 조항을 특별법에 포함하는 데 다소 부정적인 의사를 밝혀 왔다. 다만 이 대표는 지난 2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대해 “기본적인 입장은 실용적으로 판단하자는 것”이라며 “노동계는 지금 있는 제도도 충분하다 문제없다 잘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인 것 같고, 또 산업계에서는 부족하다 꼭 필요하다고 한다. 토론을 해보면 일정한 합의점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반도체특별법 찬성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반도체특별법 등을 두고 당내 이견이 많고, 반대 의견도 많다는 지적에는 “토론은 격렬하게 결정하면 따르고. 이게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원칙”이라며 “당연히 이견이 있다. 그 의견을 조정해 가고 조정해 가다가 최대한 좁혀 보되 좁혀지지 않은 미세한 간격은 결국 선출된 지도부 리더십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26일에는 국민연금 개혁 논의와 관련해 ‘2월 중 모수개혁 입법을 완료하고 곧이어 구조개혁 논의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신속한 추진 방안을 검토하라’고 당 정책위원회에 지시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9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42%로 각각 올리되, 재정 악화 시 급여 인상률을 줄이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내달 처리할 모수개혁안으로 여야가 지난 21대 국회 막판 협상에서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던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산한 여성 및 군 복무자 등에 대해선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해주는 ‘크레딧 제도’를 도입, 실질 연금 수급 수준을 높여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대표의 행보가 그동안 진보 진영이 내세웠던 분배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노총은 지난 23일 이 대표 기자회견 직후 이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해 “‘표를 위한 우클릭을 마다하지 않겠다’ 요약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사상 초유의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시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기업과 자본 중심의 성장 전략만을 언급한 이 대표의 현실 인식에 분노를 넘어 안타까움을 느낀다”면서 “(이 대표는) 재벌 대기업 회장 또는 경제단체의 수장이나 할 법한 얘기들로 연설문의 대부분을 채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히 연설문 어디에도 노동, 노동자, 서민, 취약계층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결국 ‘기업 중심’이라는 구호는 결국 노동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성장 전략을 암시한 것과 다름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당내에서 반도체특별법 반대 의견도 이어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이날 삼성전자가 지난 2년간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해 43만 시간이 넘는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2024년 10월 말까지 반도체 연구개발을 목적으로 2023년 7건, 2024년 15건 등 총 22건을 신청해 모두 승인받았다. 이 제도를 통해 2023년 1358명(중복 포함)을 대상으로 19만5552시간, 2024년 1658명(중복 포함)을 대상으로 23만8752시간의 특별연장근로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반도체 기업의 위기는 근로 시간과 무관하다”면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근로 시간 예외 적용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