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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호랑이’에서 내려오지 않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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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0 23:29:32 수정 : 2025-02-10 2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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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이족의(亦已足矣)’

1418년 음력 8월 8일, 조선왕조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세자(훗날의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풀이하면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다.

이도형 정치부 기자

이방원의 나이 51세. 재위 18년째였다. 그는 충분히 더 왕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신하들이 울며 퇴위를 말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방원은 대꾸했다.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다. 이제 충분하다.”

어렸을 때 이 기록을 읽었을 때, 나는 이방원이 포은 정몽주를 죽이고, 삼봉 정도전을 죽이고, 처가 민씨, 사돈 심씨 일가를 도륙 낸 사실을 알았다. 그때, 이방원의 말은 핑계로 들렸다. 권력에 중독된 사람의 위선적 행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방원은 왕위를 물려준 후에도 영의정 심온을 죽였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으며, 대마도를 정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사건들을 지켜보며 내 생각은 바뀌었다. 한국의 정치인들, 아니 이른바 권력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방원처럼 ‘척’하는 시늉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주어진 권력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이용하는 데는 능숙했지만, 그것을 내려놓는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 위선이라도 이방원처럼 하는 것이 ‘정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방원과 관련된 조잡한 글을 엮어 책을 냈다.

책을 쓰며 오랜만에 실록을 다시 들여다봤다. 이십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난 이방원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권력에 집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권력을 쥐고 그가 한 일은 백성을 보호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세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일이었다. 협잡과 술수, 숙청과 배신, 정책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전 왕조인 고려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었다. 그가 세종에게 물려준 환경은 이후 세종이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실록은 그가 왕위에 있을 때 백성들은 편안했고, 창고는 가득 찼으며, 적들은 굴복했다고 썼다. 그래서 나는 태종실록이 재미있었다.

‘정치적 인간’인 이방원은 때때로 고통과 번민을 토로했다. 1409년 선위 파동 중 그는 “언제쯤 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을까”라며 한탄했다. 정치인의 언어다. 이방원은 선위 파동을 빌미로 처남들을 숙청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내뱉는 단어 속에 진심을 포함할 때가 많다는 것을 취재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태종 이방원은 정치가로서 책무를 잊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책임을 다했다고 느끼자 미련 없이 ‘호랑이’에서 내려왔다. “이미 충분하다”는 그의 말엔 울림이 담겨 있다.

6년 만에 국회 출입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니, 더 많은 정치인이 자신만의 욕심을 탐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 결과, 작금의 정치적 혼란이 도래했다. 그들의 결정과 말 속에 ‘나라’보다는 ‘나’가 진하게 묻어나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문득 여의도 국회 앞에서 상상해본다. 양복을 입고 호랑이 등에 올라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으스대고 내려오지 않는 사람들을. 여야에 차이는 없다. 만약 이방원이 지금 그들을 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까? 한 마디가 느껴진다.

“자네들은, 정치를 하지도 않으면서 왜 내려오지 않나.”


이도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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