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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위해 북한도 가겠다”… 각별했던 한국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 1936~2025]

입력 : 2025-04-22 06:00:00 수정 : 2025-04-22 06: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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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발자취

권위·격식 버린 소박한 삶 실천
신자뿐 아니라 세계인이 존경
난민 문제 해결 등 꾸준히 호소
사생아 세례·동성애자 포용도

즉위 후 첫 亞 방문지로 韓 찾아
‘세월호’ 희생자 유족 직접 위로

21일(현지시간)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교황으로 손꼽힌다. 아울러 소탈한 태도와 청빈한 삶으로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특히 즉위 후 아시아 첫 방문지로 한국을 찾고 역대 한국인 추기경 중 절반을 직접 임명하는 등 생전에 한국을 각별하게 아꼈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 두번째)이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카 퍼레이드 도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오른쪽)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은 누구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과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플로레스의 이민자 가정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중학생 시절 양말 공장에서 2년 청소 노동을 하고, 공업학교 진학 후에도 제약회사에 입사해 주경야독을 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10대였던 그가 신앙적 영감을 얻은 것은 17세이던 1953년이다. 친구들과 같이 간 교회에서 한 젊은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를 하던 중 영적으로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종교적 소명과 깊은 영성을 느끼게 된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뒤 청혼 상대와 헤어진 후 1958년 예수회에 들어갔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73년 아르헨티나의 예수회 관구장으로 임명됐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됐다.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즉위 8년 만인 2013년 2월 건강 문제로 스스로 자리에 물러나면서 콘클라베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오른쪽)이 2014년 8월 서울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뒤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르겠다며 교회 역사상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최초의 교황이다. 실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세상과 교회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즉위 이후 아침 미사에 가장 먼저 초청한 사람도 바티칸의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었다. 권위와 격식을 버린 채 주교와 추기경 시절부터 한결같았던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했다. 그는 전임자들이 애용한 순금 가슴 십자가 대신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부터 착용한 철제 가슴 십자가를 착용했다. 호화로운 관저 대신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았다. 교황청의 금융 경제, 재정 개혁에도 앞장서며 파격적 행보를 이어갔다. 가톨릭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던 사생아 세례성사를 감행했고, 교리에 따라 동성애에 대해 반대했지만 “내가 누구이기에 그들을 판단하겠습니까”라며 ‘하느님의 자녀’로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포용적인 행보를 보였다. 임신 중절에 대한 여성의 권리 등 진보적 의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였고, 난민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중단 촉구 등 세계평화를 줄기차게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3월 이탈리아 로마 인근 난민센터에서 세족식을 하는 동안 한 난민의 발에 입맞추고 있다. 로마=로이터연합뉴스

◆“한반도 평화 위해 북한도 갈 것”

 

“한반도 평화 추구는 이 지역 전체와 전쟁에 지친 전 세계의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우리 모두 가슴속에서 간절히 염원하는 대의입니다.”(2014년 8월14일 청와대 연설 중)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요한 바오로 2세(2회 방한)에 이어 우리나라를 찾은 두 번째 ‘그리스도의 대리자’였다. 2014년 8월14일,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세월호 참사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던 희생자 유족과 우리 사회를 따뜻한 위로로 감싸 안았다. 한반도 평화도 간절히 염원했다. 2018년 4월1일,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부활절 강론 중 “한반도가 대화로 화해를 이루길 바란다”며 “머지않아 남북 모두에게 우정과 형제애가 피어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한반도와 전 세계가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뜻깊은 결정을 내리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교황은 2018년 10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교황청에서 만나 “초청을 받는다면 북한을 방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를 촉구했고 북한은 늘 교황청의 잠재적 방문국 명단에 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미사에서 축성을 내리고 있다. 바티칸=AP연합뉴스

교황은 2021년 교황청 핵심기구인 성직자성 장관에 유흥식 주교를 임명해 한국 가톨릭계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한국인 성직자가 교황청 장관급 고위직에 임명된 건 처음이다. 교황은 한국 차량도 애용했다. 2014년 방한 당시 방탄 고급 세단 대신 기아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쏘울을 타고, 지난해 싱가포르 방문 때 현대 아이오닉5로 이동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박성준 선임기자, 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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