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폭염에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이 반복될 조짐이다. 히트플레이션은 영어로 열을 의미하는 ‘히트’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로, 기후(climate) 변화 탓에 작황이 나빠져 물가가 오른 현상인 만큼 ‘클라이밋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는 필수 소비재인 농산물을 비롯한 식료품 등의 가격 수준이 높아 생활비 부담이 큰 국가에 속한다. 영국의 경제 분석기관 EIU 통계(2023년 나라별 주요 도시 1개 물가 기준·한국은 서울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식료품 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56% 높았다. 1990년만 해도 OECD 평균의 1.2배였지만, 2023년에는 1.6배에 이르렀다. 품목별로 보면 OECD 평균을 100으로 놨을 때 사과(279)·돼지고기(212)·감자(208)·오렌지(181)·소고기(176) 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우리 농산물 가격이 특히 높은 원인은 무엇보다 영세한 영농 규모 탓에 생산 단가가 높고 유통 비용도 많이 들어서다. 몇몇 과일·채소는 수입을 통한 공급도 주요국과 비교해 제한적인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관세는 제조업 상품엔 4% 수준인 데 비해 농산물을 포함한 1차 산업엔 2022년 기준 14.9%나 된다. 농·어업 보호를 위해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긴 결과 소비자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는 구조다. 히트플레이션에 대비하려면 농어업 생산성을 높이는 일 못지않게 수입 확대 등 구조적 방안도 모색해 생산자·소비자 보호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포도는 국산이 주로 출하되는 5∼10월에 수입산에는 최대 45% 관세가 적용돼 비싸지지만, 그 외 기간에는 가격 안정세를 보인다. 2004년 칠레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당시만 해도 국산은 값싼 칠레산에 밀릴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었지만, 올해 상반기 국내 농식품 수출에서 최대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 33.6%)을 기록할 정도로 해외 판로도 개척했다. 잇단 FTA 체결로 글로벌 관세 문턱을 낮춘 데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우량한 신품종으로 품질을 높인 포도의 변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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