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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모래시계 조폭’의 재심 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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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9-23 23:14:37 수정 : 2025-09-23 23:14:36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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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64년 경상남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발생했다. 당시 18세였던 최말자(79) 할머니는 한 남성의 강제 입맞춤 과정에서 상대의 혀를 깨물었다. 성폭행에 맞선 저항이었으나 법원은 할머니의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온 할머니는 재심을 청구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사건 발생 61년 만인 지난 10일 법원은 할머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주홍글씨 꼬리표를 뗀 것이다.

1850년 발표된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는 계율이 엄격한 청교도 사회에서 간통죄를 저지르고 ‘A’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 한 여인의 삶을 다뤘다. 주홍글씨는 단순한 형벌을 넘어 사회적 낙인의 상징이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한 번 새겨진 주홍글씨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1970년부터 1990년대까지 격동기 한국 현대사를 다뤘던 드라마 ‘모래시계’. 1995년 방영 당시 ‘귀가시계’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모래시계와 함께 주가가 올라간 이가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다. 그는 1993년 카지노 대부인 정덕진 형제와 ‘6공의 황태자’ 박철언 의원 등을 수사한 검사였다. 앞서 1992년 광주지검 검사 시절에는 폭력조직인 국제PJ파 두목으로 알려진 여운환(71)씨를 구속하기도 했다. 결국 여씨는 1992년 대법원에서 국제PJ파에 자금을 지원한 점 등이 인정돼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다. 이런 경력 탓에 홍 전 시장은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다.

이후 홍 전 시장이 드라마 덕택에 화려한 정계 진출을 했다면 여씨는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조직폭력배 두목으로 알려지며 질곡의 삶을 살아야 했다. 여씨는 “법원의 유죄 선고가 홍 전 시장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라며 결백을 주장해왔다. 누명을 벗기 위해 그는 2017년 첫 번째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최근 새로운 증거를 들고선 두 번째 재심을 신청했다고 한다. 30여년 전 모래시계 검사와 조폭 두목이 법정에서 다시 맞붙을지, 여씨가 조폭 두목이었다는 낙인을 지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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