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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교실 논란 속 아빠의 존재감 [정지혜의 빨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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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30 11:00:00 수정 : 2020-05-30 1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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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우리 사회에 닥친 커다란 변화 중 하나가 ‘돌봄 대란’이다. 전국의 유치원과 초·중·고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자녀가 있는 맞벌이 직장인 10명 중 7∼8명이 ‘돌봄 공백’을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등이 지난 3월 설문한 결과 8∼13세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의 돌봄 공백 경험은 85.7%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방과후학교와 돌봄교실을 학교에서 운영할 근거를 마련하는 ‘방과후학교 법제화’가 추진돼 한 차례 폭풍이 불었다. 교육부가 지난 19일 이 같은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 입법안을 내놓자마자 교원단체들은 “돌봄은 학교 소관이 아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3일 만에 관련 입법 추진은 중단됐다.

 

일부 학부모 단체의 이의제기로 불씨는 재점화했고,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은 지난 22일 “대한민국 초등교사들이 스스로 교사이되 교육자는 아니라고 선언했다”며 “교육자 본분을 망각한 교원단체의 교육법 개정 입법안 저지를 규탄한다”고 성명서를 냈다.

광주 서구 광천초등학교병설유치원에서 긴급돌봄교실 교사가 원아와 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교원과 학부모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 동반자여야 할 관계가 자꾸만 대립하는 현실이 유감스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 되면 의문을 던지게 된다. 아이 돌봄과 관련해 이러한 갈등은 왜 해결되지 못한 채 반복되는 것일까. ‘학교와 교육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논하는 것이 정말 핵심일까. 본질을 잘못 짚은 채로 엄마들과 교사들이 애꿎은 싸움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두가 엄마’? 아빠들은 어디 갔나요

 

이 논쟁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또 다른 주양육자, 아빠들의 부재다. 정치하는 ‘엄마들’이 다소 감정적인 성명서까지 내며 열변을 토하는 동안 정치하는 아빠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이 엄마들과 대치 구도에 놓인 건 대표적인 여초 직군인 초등학교 교사들이다. 선생님이 남초 직군이었다면 학교에 돌봄을 맡기려 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또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

 

독박육아를 성토하고, 공동육아를 외치며 ‘라떼파파’(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빠)를 독려해 온 사회라기엔 너무 미진한 변화의 현주소다. 코로나19 같은 비상 상황은 이를 더욱 적나라게 드러냈다. 돌봄대란이 터지자마자 아이를 누가 볼 것인지를 두고 벌어진 기싸움에도 결국 여성들만 참전한 것이 씁쓸한 현실이자 불편한 진실이다.

 

교원단체의 거부 반응에 항의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쓴 해시태그가 ‘#모두가엄마다’라는 점, 정치하는 엄마들이 ‘집단모성’을 주요 가치관으로 들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맞벌이 시대, 공동육아가 요구되는 사회적 변화에 걸맞은 ‘집단부성’이 자리잡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모든 여성이 엄마라면 모든 남성은 아빠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 전담이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엄마 아빠 공동의 몫이다. 남성이 혼자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때도 역할분담은 여성의 가사노동 전담이지 독박육아가 되어선 곤란하다. 직장이냐 가정이냐의 장소 차이만 있을뿐 하루 종일 맡은 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아빠의 참여가 없거나 현저히 적은 육아는 좋지 않다.

 

여성이 가정 경제를 함께 책임지는 시대가 된 지금은 더더욱 ‘맞밥’과 ‘공동육아’가 필수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맘카페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고민글 중 하나는 “남편이 아이 돌보기에 너무 무심하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육아 대디에게 불이익을 주고, 여전히 지자체의 돌봄 지원이 부족하다는 핑계에 머물러 있기엔 모두의 현실이 너무 팍팍하다. 사회 문화적 인식과 미비한 제도 아래에서 아빠들이 아이와 거리를 좁히지 않는 것을 보며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비혼이나 딩크족(아이를 낳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 되기를 결심을 한다.

 

◆현행 돌봄지원의 한계…아빠 역할 축소해선 안 돼

 

진정 라떼파파를 긍정하는 사회라면, 돌봄교실을 비롯해 각종 육아 지원 시스템의 초점을 ‘남편의 육아 참여’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히 학교나 지자체에 돌봄 시설을 늘리는 것, 직장어린이집 배정 때 여성에 가점을 주는 것, 남초 회사에는 어린이집이 없어도 된다고 인식하는 것 등은 공동육아라는 근본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여성의 육아 부담을 이렇게 사회하고만 분담하는 것은 아이 돌봄에서 남편의 역할을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경력단절 등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도 현재는 여성들이 도맡는 형편이다. 남성들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육아에 대한 압박과 육아휴직 리스크를 감수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상식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여성의당 김은주 공동대표는 점점 늘어나는 돌봄 서비스 증가 수요에 대해 “여성의 돌봄에 대한 전담 책임을 남성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누군가에게 위탁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맞벌이에 따른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서비스 확대는 필요한 부분이나 이는 완전하거나 유일한 대안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 공동대표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기업에 패널티를 부여하거나, 남성이 육아에서 여성과 동일한 주체임을 명시하는 사회 문화적 홍보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저녁이 있는 삶, 근무시간 축소 등도 실질적으로 가능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직은 이것이 현실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돌봄교실 법제화를 한다고 해도 교육부와 학교가 책임 지고 해결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장에서는 이를 학교에 맡기기보다 다른 정부 부처와 협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등교사 서모(54)씨는 “이미 수업 외 업무가 과중한 데다 돌봄교실 관련 업무까지 담당하는 초등 교사는 더욱 힘들다”며 “학교 현장은 방과후학교 법제화에 거의 반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는 공간 대여와 관리 업무만 담당하고, 보육과 방과후 수업은 지자체 등에서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30대 교사 A씨도 “돌봄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면 돌봄교사 인력을 충원하거나 이들의 근무시간을 늘리고 수당을 더 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여자 선생님이 많은 초등학교에 돌봄 업무를 가중하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고 답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정지혜의 빨간약’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그랬듯 빨간약을 먹고 나면 보이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예민하게 분석해보는 코너입니다.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제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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