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저임금보다 20% 가까이 높은 생활임금이 보편화되면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을 보장하면서 내수도 살아날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자체와 기업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면서 공공근로자 등이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2009년 서울시와 산림청이 공동으로 추진한 ‘숲 가꾸기 사업’에 참여한 공공근로자들이 서울 남산공원 백범광장에서 발대식을 갖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생활임금제는 근로자가 일해서 번 소득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하도록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기본적인 임금 수준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계산하기 위해 주거, 교육, 문화 등 각종 생활비를 감안해 산출한다. 지자체가 직접 고용한 공공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주거나 지자체가 민간업체와 위탁·용역 계약을 맺을 때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계약조건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적용한다.
저임금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 엄연히 법정 최저임금 제도가 있지만 생활임금이 새삼 관심을 받는 것은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조례 등으로 생활임금을 제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경기 부천시가 생활임금조례를 처음 제정한 이후 올 들어 서울시도 생활임금조례를 제정하는 등 여러 지자체에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국회 환노위 소속 김경협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발표한 ‘생활임금제 시행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제도를 시행 중이거나 시행할 예정인 지자체는 모두 28곳이다.
부천시 등 18곳은 이미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 성동구 등 7곳은 입법예고 중이며 경기 성남시 등 3곳은 조례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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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인 지자체의 평균 생활임금액은 시급 6629원이다. 법정 최저임금인 5580원보다 1049원(18.8%) 많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39만원으로 최저임금 116만원보다 월 최대 22만원(연 264만원) 많다.
해당 지자체의 모든 근로자가 생활임금을 받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자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공공근로자 5342명이 적용 대상이다. 지자체와 출연기관 직접고용 근로자만 적용하는 지자체는 16곳(57.1%), 민간위탁기관 직접고용 근로자까지 적용하는 지자체는 11곳(39.3%)이다.
서울 성북구 정도만 공사·용역 등 공공계약 체결 민간기업과 하도급업체가 고용한 근로자(간접근로자)까지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생활임금제 도입으로 지자체당 시행 첫해 2억8000만원 내외의 예산이 소요되며 근로자는 1인당 연평균 114만원 소득 상승 효과를 얻게 된다. 지자체들은 아직 법적인 근거 없이 생활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달 모든 지자체 공공근로자에게 생활임금을 의무화하기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환노위를 통과했으며 앞으로 본회의를 통과하면 다른 지자체도 따라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생활임금제도’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면서 공공근로자 등이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2009년 서울 성동구 소월아트홀에서 열린 ‘희망근로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에서 공공시설물 정비 등 공공근로 참여자들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법정 최저임금의 수준이 적절하느냐에 대한 논란 속에서 생활임금이 확산하면서 최저임금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생활임금을 적용하면 지역사회의 저임금 근로자가 일자리를 통해 생활을 보장받아 소득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곳의 근로자는 이직·결근이 줄고 빈곤율이 낮아지는 효과를 나타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생활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늘어난 급여분을 사용하면 내수도 촉진된다. 고소득층과 달리 저소득층은 늘어난 가계소득이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임금을 올리면 경기 부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가계소득 보장 정책으로서 생활임금제가 민간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생활임금이 지자체와 시장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져 안 그래도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인 지자체 19곳을 조사한 결과 ‘자체 수입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는 지자체가 절반이 넘는 10곳이었다. 재정자립도 측면에서도 서울, 서울 중구, 경기, 세종 4곳을 제외한 15개 지자체가 전국 평균인 44.8%에 미치지 못했다.
재계는 생활임금이 확산할 경우 노동계가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생활임금 도입으로 공공과 민간의 임금 격차가 발생해 임금 결정에 부정적 환경이 조성되고 인건비 상승을 일으켜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생활임금을 ‘최소한의 인간적·문화적 생활을 가능하게 할 목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고 추상적으로 정의하고 있어 최근 논란이 된 통상임금 문제와 유사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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