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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우리] 강대국 틈에서 새 질서를 설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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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10 23:48:09 수정 : 2025-04-10 23: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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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끝모를 ‘관세 보복전’ 격화
국제 질서 설계권 품기 위한 경쟁
韓, 아세안 중심 다자협의체 활용
전략적이고 적극적 외교 펼쳐야

2025년, 세계는 다시금 질서의 균열 앞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 관세 공세와 이에 따른 보복조치가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가 다 같이 수렁에 빠지고 있다. 관세 유예로 한숨을 돌린 것 같지만 치열한 물밑교섭의 끝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이 투하한 관세 폭탄으로 진공상태가 된 틈을 파고들어 세력권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중 간 경쟁이 정치, 경제, 안보 등 전 영역에서 구조화되는 것도 문제지만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공세,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의 대응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무역 갈등이나 지정학적 긴장 차원을 넘어서, 국제 질서를 떠받쳐온 신뢰와 규범을 약화시키고, 외교적 해법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만큼 결과는 더욱 파괴적이다.

최윤정 제17차 ARF EEP 공동의장·세종연구소 부소장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지난 4월 8일 말레이시아와 공동의장국으로서 제17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전문가 및 저명인사(EEP) 회의를 이끌었다. ARF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세안 중심성을 제도적으로 지탱하고, 역내 중소국들의 전략 공간을 보장해 주는 중요한 다자 틀이다.

회의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 방향은 모든 참석자의 공통 관심사였다. 미국 EEP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협상용과 정책용으로 구분해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트럼프 현상이 드러내는 미국 외교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실제 다수의 EEP 전문가들도 “미·중 경쟁은 더 이상 특정 현안을 둘러싼 충돌이 아니라 국제 질서 자체의 설계권을 둘러싼 장기적 경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는 ARF의 가치와 방향성을 다시 점검해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ARF가 강대국 중심의 구도를 넘어 실질적 규칙 설계의 무대로 자리매김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공동의장국으로서 이번 회의에서 회원국들과의 논의를 이끌며 숙의한 결과, 필자는 세 가지 핵심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첫째,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신뢰 회복과 규범 강화. 둘째, 예방외교와 위기관리 메커니즘의 제도화. 셋째, 디지털·사이버·기후 등 신흥 안보 이슈에 대한 통합적 대응 능력의 구축이다. 나아가 앞으로 ARF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북아 안보협력 정상회의 같은 보완적 포맷을 통해 ARF 회의 계기에 개최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협력 측면에서도 아세안 중심의 다자협의체는 한국 외교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은 교착 상태이지만, 세 나라는 모두 아세안과 양자 FTA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다자무역협정 기반도 갖고 있다. 특히 아세안이 2030년까지 디지털 경제를 두 배로 키우려는 ‘디지털 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에 한국이 전략적으로 관여한다면, 보호무역주의 충격을 완화할 새로운 시장과 규범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 EEP 회의에서 한국이 제안한 ‘디지털 안보’ 통합전략은 참가국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ARF의 의제를 미래로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편 ARF와 아세안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외교 자산이다. 북한은 아세안 10개국 중 7개국에 외교공관을 두고 있으며, 아세안은 북미 정상회담의 중재 무대를 제공한 경험이 있다.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북한이 비교적 신뢰를 갖는 파트너이며, 체제는 다르지만 발전 경로의 참고 모델로 기능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정세 관리에 있어 아세안과의 전략적 연대를 재구성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말레이시아는 이번 회의에서, 이제는 ARF뿐 아니라 아세안+3(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같은 역내 플랫폼이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성과 실효성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플랫폼의 생명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국 외교 역시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우리는 어떤 질서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질서를 함께 설계할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선택지는 남지 않고, 논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최윤정 제17차 ARF EEP 공동의장·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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