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를 배경으로 평범한 가족의 끈끈하고 따뜻한 사랑을 담아낸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전 세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3월31∼4월6일 이 드라마의 시청 수(시청 시간을 상영 시간으로 나눈 값)는 540만으로, 비영어 TV쇼 중 1위에 올랐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한 게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이 드라마는 제주를 중심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견뎌낸 우리 부모세대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방영전 올해로 77주년을 맞은 4·3사건을 어떻게 녹일지 관심을 끌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4·3의 아픔을 직접 조명하진 않았고, 일각에선 ‘가족 판타지에 그쳐 서운했다’는 리뷰도 등장했다.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10일 ‘제주 4·3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료로 4·3 기록물이 인정받은 만큼 폭싹 속았수다의 아쉬움을 날려줄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에 등재된 4·3 기록물은 총 1만4673건에 달한다. 이들 기록물은 1947년 3월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해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과 남로당 제주도당 중심의 무장봉기(1948년 4월3일)를 거쳐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의 전면개방(1954년 9월21일)까지 약 7년간의 비극을 담고 있다. 당시 제주도 등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희생된 피해자(4·3위원회 지난해 3월 기준 1만4822명)의 진술, 진상 규명 및 화해의 과정까지 아우른다.
4·3사건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기까지 문학계의 공이 컸다. 특히 문학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4·3 기록물에 포함된 작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은 국가권력의 강요로 제주에서조차 ‘금기’였던 이 사건을 처음 널리 국내에 알렸다. 제주도 태생인 현 작가는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런 197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한 뒤 당시 보안사령부에서 고문 등 혹독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이후 대학가와 지식인이 4·3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문화계 전반으로 퍼져갔다. 결국 4·3은 작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2021년 발행)를 통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4·3은 현재진행형이다. 제주4·3평화재단은 정부의 진상 조사에서 미진한 점을 보완하려고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행방불명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정부도 희생자에 대한 배상 작업을 서두르는 한편 개인과 사회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시설 마련에 힘쓰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지영 감독이 4·3사건의 아픔과 상처를 그린 영화 ‘내 이름은’ 연출을 맡아 지난 3일 크랭크인 했다고 한다. 마침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애순이의 어머니 광례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염혜란도 출연한다니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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