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와 관련해 전날(1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실무회의에서 한국 측이 규제 철회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기존 주장을 13일 되풀이했다.
NHK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재차 회의록을 확인했지만, 철회를 요구했다는 명확한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한국 측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는 전날 회의에 참석한 경제산업성의 이와마쓰 준 무역관리과장 등이 참석했다.
이와마쓰 과장은 한국 측의 발언은 회의 뒤 양측이 합의한 발표 내용을 넘어선 것이라며 경제산업성이 한국 측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양국의 신뢰 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교도통신도 경제산업성의 담당자가 "(한국 측으로부터) 요청을 받지 못했다"고 이날 거듭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전날 회의에 참석한 우리측 전찬수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이날 오전 하네다공항에서 서울로 출국 전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측의 전날 발표 내용을 부인하며 조목조목 반박하자 긴급히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日 "한국이 수출규제 철회 요구하지 않았다" 같은 주장 되풀이하는 이유
앞서 한철희 과장은 하네다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응조치) 철회 요청은 없었다는 (일본 측) 주장이 있는데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고 조치의 원상회복, 즉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전찬수 과장은 회의의 성격에 대해 "일본 측은 어제 회의가 단순한 설명이라는 입장에 한국 정부가 동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어제 회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므로 협의로 보는 게 더 적당하다는 주장을 관철했다"며 "일본 측의 어제 설명은 30분에 그쳤고 4시간 이상 한국 측 입장과 쟁점에 대한 추가 반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경제산업성은 전날 회의 내용에 대해 수출규제를 엄격히 한 이유와 '징용 문제'의 대항 조치가 아니라는 점 등을 설명했다며 한국 측으로부터 철회 요청은 없었다면서 "설명한 내용은 이해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NHK는 경제산업성이 이와 관련한 한국 측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 이례적 기자회견을 긴급히 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 대표단이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의 설명에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고 밝히자 일본 측이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 주장을 펼친 것이다.
앞서 경제산업성 간부는 전날 한일 실무회의 후 열린 브리핑에서도 "한국 측으로부터 (규제강화의) 철회를 요구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정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와마쓰 과장은 한국 측으로부터 오는 24일까지 회의 개최에 대한 요청이 있었다면서 개최 여부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답했다.
◆靑 수출규제 파장 최소화 방안 모색…더 강경하게 나설 가능성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여파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장기화하면 한국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에 덧붙여 일본의 조치가 정당성을 결여했다는 판단에 따라 더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본 측이 수출규제 조치의 근거로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을 시사한 것과 관련,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지난 12일 '실제 위반사례가 있는지 한일 양국이 동시에 국제기구 조사를 받자'고 제안한 것은 청와대의 단호한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당초 청와대와 정부는 맞대응을 최대한 자제해 전면전을 피하고자 했으나, 일본이 사실을 왜곡하는 등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자 '국제기구 조사'라는 강경 카드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선 셈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본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무역보복 조치를 장기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며 "우리는 이 사태에 대해 각오를 단단히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도 서서히 수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며 "한국 기업이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면 우리 정부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2일 전남 미래경제 비전 보고회 참석차 전남 무안을 찾아 "전남의 주민들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불과 열두 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고 밝혔다.
'이순신 장군'을 언급한 것 자체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여전히 원만한 사태 해결을 기대하면서도 일본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추가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일본이 보복성 조치를 철회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발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 해법"이라면서도 "정책실을 중심으로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계속 검토하고 준비 중"이라고 언급했다.
◆한일 관계 악화 장기화시 美 손익은?
청와대가 앞으로 중점 추진할 대응 조치 중 하나로는 미국에 한일 간 중재를 요청하는 것을 포함한 '여론전 강화'가 꼽힌다.
일본의 규제 조치로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할 경우 미국 스스로 '결코 득이 될 게 없다'는 손익계산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안보협력 문제를 비롯해 미국이 구상하는 동북아 질서 유지에 좋을 게 없지 않겠는가"라며 "미국이 이번 상황을 방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 조정관도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매슈 포틴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을 면담한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측이 우리의 문제의식에 완벽히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측이 한일 간 중재와 관련해 선뜻 입장을 내놓을 상황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일본의 이번 조치가 '국내 정치용' 성격이 다분한 만큼 오는 21일 참의선 선거 이후 일본의 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청와대는 장기전에도 대비하는 모습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인 불화수소(에칭가스)를 한국 기업에 공급할 수 있다고 한 러시아의 제안을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도 이런 기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전날 러시아로부터 실제로 이런 제안이 있었고 이 사안을 정부가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확인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조치 후 기업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업계 역시 러시아산 불화수소의 품질이 검증만 된다면 대체재로 이를 진지하게 검토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아베 지지율 되레 하락…수출규제 카드 되레 '독(毒)' 됐나?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지지율이 한 달 전보다 1.8%포인트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지통신에 따르면 지난 5∼8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1.8%포인트 감소한 43.1%로 나타났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0.5%포인트 줄어든 31%였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했고 4일부터 이를 발동했는데, 이로 인한 지지율 상승효과는 보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지지통신은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아베 총리가 지난달 하순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외교적 수완을 강조했지만, 노후자금 '2000만엔(약 2억원) 부족 문제'도 있어 지지율이 조금 감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청은 지난달 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니 노후를 위해 2000만엔의 저축이 필요하다고 보고서에서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공적 연금 제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공식 보고서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번 조사에선 금융청 보고서 채택을 거부한 일본 정부 대응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는 응답이 62.1%였다. 또 공적 연금 제도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대답은 52.4%였다.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 후 개헌 논의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41.2%) 의견이 반대(26.3%)보다 많았다. 아베 총리는 향후 개헌을 논의할 필요성을 최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모르겠다'는 응답도 32%대를 차지했다.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 이유로는 '다른 적당한 사람이 없다' 20.7%(복수 응답), '리더십이 있다' 13% 등의 순이었다.
지지통신의 조사는 18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개별 면접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유효 회수 비율은 61.7%였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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