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을 향한 경제보복 조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대표 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한국 반도체 생산에 지장이 생기면 반도체를 사용하는 일본 등의 가전제품 제조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은 외교 관계가 악화해도 경제 측면에서는 양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했다.
일본은 현재 수출규제의 이유로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을 운운하고 있지만, 되레 일본의 여러 위반 사례가 유엔에 확인돼 지적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에 담겨 있어 일본 주장의 허술함을 뒷받침하고 있다. 유엔 보고서만 봐도 일본측 주장 및 근거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한국과의 신뢰 관계'와 '수출 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 등이었다.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부적절한 사안'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국이 대북 제재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아베 신조 정부는 특히 대북 제재 이행 문제에 더 치중해왔는데 처음부터 논리가 박약한 근거로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일본에 국제기구 조사를 제안하며 한국의 잘못이 발견되면 사과하고 시정하겠지만, 우리의 잘못이 없다면 일본 정부는 사과하고 수출 규제도 즉각 철회하라고 정면 대응했다.
일본은 다음달 22일쯤 한국을 안보상 우호 국가인 '백색 국가'에서 제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되면 1100개 품목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일 교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악재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아베 정부가 자국의 합리적인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미국은 중간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진 않지만 한일 갈등이 한미일 공조에 도움이 안 된다는 데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으로 가는 반도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이 이미 몇해 전부터 한국산 제품 수입에 대한 무역장벽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일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농업 분야에도 수입규제를 취할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다음달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 배제 조치가 이뤄질 경우 양국 산업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14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최근 발간한 '2018년 무역장벽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2016년과 2018년 한국산 수산화칼륨과 철강제 관연결 구류에 대한 반덤핑 부과를 결정했다.
건수가 많은 건 아니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구제 조치가 2002년 이후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수산화칼륨은 칼륨을 물에 용해한 액제 제품 또는 백색 플레이크 고체로 화학비료의 원료, 알칼리 전지 전해액, 사진형상액, 액체비누, 세제의 원료로 사용된다.
반덤핑 조사 전인 2014년 일본 내 수산화칼륨의 한국산 점유율은 93.2%로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2015년 2월 일본 업체가 한국과 중국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신청해 같은 해 5월 조사가 시작됐고 2016년 8월 9일 한국산 제품에 49.5%의 반덤핑 관세를 5년간 부과하기로 최종판정했다.
공장이나 플랜트 시설의 액체와 기체를 운송하는 배관을 서로 연결하는 데 필요한 철강제 관연결구류에 대한 반덤핑 조사는 2017년 3월 개시했다.
일본기업 3곳이 한국산과 중국산 제품이 덤핑 수입돼 매출이 줄었다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다.
◆日, 韓 농업 분야에도 수입규제 취할 가능성
2016년 기준 한국산 제품은 일본 수입시장의 16.5%를 차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30일 한국업체에 41.8∼69.2%의 관세를 2023년까지 부과하는 것으로 최종결론 내렸다.
그간 자유무역을 주창해온 일본은 '수입규제 발동에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하고 세계무역기구(WTO)보다 엄격한 반덤핑관세 조사 기준을 고수해왔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일본은 반덤핑 조치를 빈번하게 사용하는 국가가 아니었다"면서 "그러나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반덤핑 제도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WTO 협정에 따라 이뤄지는 반덤핑 관세 부과 등 무역구제 조치 이외에 다양한 비관세장벽으로 한국산 제품을 규제하고 있다.
한국산 김 등에 부과하는 수입할당(Import Quarter) 제도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자국 어업자와 가공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산물 수입에 대해 수입물량을 직접 규율하는 수입쿼터제도를 운영한다.
대상 품목은 김, 고등어, 꽁치, 대구, 오징어, 청어 등 17개 품목이다.
한국 정부는 꾸준히 수입할당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할당량을 늘려주는 식으로만 대응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전체금액과 세부 할당별 수량 제한을 두고 있고 할당 신청 시기, 접수 기간 제한 등 복잡한 운영상 제한까지 더해져 한국의 대일 수산물 수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수입할당 제도는 현행 WTO 체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농업협정에 따르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수량 제한조치는 일반관세를 전환해야 하는데 일본의 수입할당 제도는 예외 사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日 내달 중순 韓 '백색국가'서 제외시 거의 모든 산업 통관절차 까다로워져
일본은 한국 농식품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수출입 규제 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 농산물 수출로까지 번질 경우, 일부 신선 채소가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의 주요 대일 수출 농식품으로는 파프리카, 토마토, 김치 등이 있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대일 수출 비중은 99%에 달한다.
이 장관은 "일부 (규제에) 민감한 품목이 있다고 판단한다"며 "규제를 한다면 (비관세장벽인) 검역 규제(SPS)가 아닐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일본은 한국의 활어 운반 특수차량은 일본 내에서 도로 운행을 못 하도록 하거나 한국 수출품은 보다 높은 단계의 잔류농약 명령검사를 적용하는 등의 조처를 하고 있다.
일본이 지난 1일 고시한대로 다음달 중순 이후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한다면 거의 전 산업에서의 통관 절차가 훨씬 까다로워진다.
일본은 지난 12일, 한일 실무진급 양자협의에서 백색 국가 배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경제·산업적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어 이 같은 일본의 대한국 수출입 규제는 자국의 산업에도 상처를 남길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반도체 소재가 30% 부족해지면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은 2.2%, 일본은 0.04%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인해 한국 반도체 부품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 해당 부품을 사용하는 일본 업체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규제 대상을 확대하면 그만큼 한국뿐 아니라 일본이 받는 피해도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규제 대상 확대시 한일 모두 피해 커질 것"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이 늘어난 가운데 한국산 수산물의 최대 수입국인 일본으로의 수출은 되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최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에 이어 한국산 농·수산물 수입 제한도 고려하고 있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수산물 수출이 더 줄어들지 않겠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해양수산부가 펴낸 수산물 수출 동향 보고서 '수산물 수출위크'를 보면 올해 1월 1일∼7월 1일 대(對)일본 수산물 수출액은 3억6100만 달러(한화 약 42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줄었다.
이 기간 우리나라의 수산물 총수출액이 12억8200만 달러로 7.3% 증가했지만 1위 수출 대상국인 일본 수출은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2위 수출 대상국인 중국에는 2억7500만 달러어치를 수출해 46.2%나 급증했고, 3위인 미국도 1억5100만 달러로 6.0% 늘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대일본 수출액 감소와 관련해 "일본이 참치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참치 수출이 22%나 줄고 마른김 수출도 21% 줄어든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은 WTO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 판결에서 한국에 패소한 뒤 사실상 '보복 조치'로 지난달부터 한국산 넙치와 생식용 냉장 조개 등 5개 품목에 대한 수입 검사를 강화했다.
해수부는 일본의 검사 강화 조치로 관련 대일 수산물 수출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피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4년째 장기 표류하고 있는 한일어업협상도 한일 관계 악화로 체결되기가 더 어려워졌다.
한일 양국은 한일어업협정에 따라 매년 상대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입어했지만, 2015년 어기가 끝난 이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후 상대국 EEZ에서 입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수산업계는 한일어업협상 불발로 어족 자원이 많은 일본 EEZ에 입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5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부는 한일어업협상 불발 시를 대비해 일본 어장의 의존도를 낮추고 대체 어장을 개발하는 정책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日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수출규제 지속?
전문가들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오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에도 지속할 것이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국기업의 피해가 더 크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4일 일본 교역·투자 기업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학계·연구계 통상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일본의 수출제재 영향 긴급 설문조사 결과'를 내놨다.
전경련은 설문 결과 일본의 수출통제로 인한 한국 기업의 피해 정도가 '매우 높다'(54%)와 '약간 높다'(40%)는 답변이 90%가 넘었다고 전했다.
응답자의 70%는 이번 수출통제 조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일본의 참의원 선거(7월 21일) 이후에도 조치가 지속할 것으로 봤다.
일본의 조치가 장기화하면 한국이 더 큰 피해를 본다는 답변이 62%로, 반대로 일본 피해가 더 크다는 답변(12%)보다 훨씬 높았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수출통제가 장기화할 경우 다른 소재에서도 추가조치가 예상된다"며 "일본이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소재가 많으므로 조속히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가장 바람직한 대응방법으로 △외교적 대화(48%) △부품·소재 국산화(30%) △WTO 제소(10%) △2차 보복 대비(6%) 등을 꼽았다.
엄치성 실장은 "일본경제계와 쌓아온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적극 소통하고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며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의 협력채널인 '한일재계회의'를 통해 '윈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아사히 신문 "日 경제보복, 韓 괴롭히는데 목적 있는 것 같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는 한국경제 뿐만 아니라 일본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같은 조치라고 아사히 신문이 14일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 내에서는 이 조치가 문제를 해결하려는게 아니라 한국을 괴롭히는데 목적이 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는 것이다.
하코다 데쓰야 논설위원은 '보복은 해결책이 아니다' 란 제목의 14일자 칼럼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우려와 불만, 증오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며 "징용공 문제에서 한국 정부의 태도에 한계를 느낀 아베 신조 정권이 반도체 등의 소재 수출에 칼을 빼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출규제를 "극약같은 조치"로 비난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오늘날의 사태는 한국 정부의 무책임에서 초래된 것"이라면서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강경파 정치인들이 이번 수출규제 조치를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제규칙 위반 여부는 차지하고 수출규제로 일본의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면서, 이번 조치로 "한국 측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치관이 다양한 현대 한국에서는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반일을 촉구해도 표류하곤 한다"며 "일상생활과 유리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이번에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일본에 도덕적으로 강한 잘못이 있다고 느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면서, 한국 국민정서가 "(한국)정부의 태도를 경화시킬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하물며 최근 일본에선 (수출규제가) 문제해결 보다는 한국을 괴롭히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담론도 난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코다 논설위원은 "과거 문제로 미래의 가능성을 막을 권리는 한국과 일본 그 어떤 정부에도 없다"며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에 대한) 지지가 압도적이라고 하지만, 정말 해결로 이어지겠는가. 문제의 뿌리가 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에 관련된 한 일본 정부 당국자는 '사실 이런 일을 해선 안 된다'고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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