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힐·토니 오슬러 등 작품 96점 전시
미디어아트 현재까지의 역사 보여줘
“기술과 매체의 발전·변천 흐름 속에서
인간의 시각·감수성 변화 엿볼수 있어”
전시 마지막 NFT 작품도 소개 ‘눈길’
AI(인공지능)와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메타버스,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까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기술 혁명 뒤에 또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 속에 정신이 혼미하다면, 차분히 역사를 돌아볼 때다. 미래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이에게 유일한 참고서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기술 발전과 예술의 상상력이 상호작용해온 역사를 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대표적 기관 독일 칼스루에의 ‘예술과 미디어센터’(ZKM·Center for Art and Media Karlsruhe) 소장품 약 100점으로 꾸민 ‘미래의 역사 쓰기 : ZKM 베스트 컬렉션’ 전시다. 광주시립미술관과 ZKM이 공동 주최해 미디어아트 거장들이 남긴 역사적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ZKM은 독일 건축사가 하인리히 클로츠가 1989년 설립을 추진, 1997년 개관한 미디어아트 기관이다. ‘디지털 바우하우스’라는 별칭을 가졌다. 미디어아트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약 60년간 이뤄진 관련 연구와 창작, 전시, 아카이빙을 하고 있으며 20, 21세기 작품 약 1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게리 힐, 스타이나, 우디 바슐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빌 비올라, 백남준, 브루스 나우만, 제니 홀저, 제프리 쇼, 토니 오슬러 등 64명의 작품 96점이 나온다.
전시는 예술에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선구자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이어 기술과 매체의 발전이 미디어, 신체, 초상, 풍경을 인식하는 우리의 시각 범위, 감수성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갔는지 보여준다. 이어 미래엔 어떤 매체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엿본다. 그 마지막 자리를 ZKM의 NFT소장품 석 점이 차지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ZKM은 이미 2017년 NFT를 소재로 전시를 하고, 소장품으로 작품을 기관에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시 개막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ZKM의 테크니션 크리스티앙 롤케는 “디지털작품은 얼마든지 복제될 수 있고 여기저기 불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는데, NFT는 그걸 보완하는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지만, 그런 물음은 시기상조”라며 “모든 기술은 처음에 만들어진 이후에는 다양한 실험, 가지고 노는 작업들이 선행돼야 하고, 컴퓨터나 인터넷이 그랬듯이 그 실험들이 진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회화는 작품이 있고 그 뒤에 작가의 서명이 있다면, NFT 작품은 서명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경우로, 서명과 작품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역시 전시장에서 만난 ZKM 큐레이터 클라라 룽게는 “NFT는 새롭게 등장한 예술 매체이고, 분명 동시대 오늘날 예술가들이 그것을 이해하려 시도하고 접근하고 실험 중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ZKM의 설립 정신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생각해 소장품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역사 속에서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미학의 발견이었다. 전시는 발견한 미학을 보여주고, 발견될 미학을 관람객 몫으로 남긴다.
신기술, 신매체가 갓 나왔을 때 가졌던 전위적 아우라가 사라진 예술작품에 이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전위의 아우라는 클래식의 위엄으로 전환되기도, 대중화된 생활 기술이 되어 일상 속에 키치로 남기도 한다. 최신 버전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어도 수십년 전 문구점 앞 오락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미디어아트계의 고전이 된 작품들이 관람객에게 여전한 소구력을 가진다.
내년 4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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