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살림살이
전국 기초단체 재정자립도 평균 11.6%
정부 2년 연속 지방교부세 삭감 ‘직격’
지자체, 지방채 잇단 발행 재정난 가중
서울·경기도·화성시만 재정자립도 50%↑
‘2할 자치’ 자조
국세 80%·지방세 20% 30년째 제자리
지자체 사무 중 자율 권한 30%대 불과
단체장 공약 사업 ‘국비’ 매칭해야 가능
시·도지사協 “지방분권 개헌안 2월 마련”

광주광역시는 지난해 11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하면서 716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가 지방자치단체에 배부해야 할 지방교부세를 임의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교부세 376억원을 받지 못하게 된 광주시는 그만큼 빚을 내 사업비를 충당했다. 광주시 지방채는 2023년 3300억원에서 지난해 4326억원으로 29%나 뛰었다. 지방채 발행 비율도 21.45%로 재정위기단계인 25%에 육박한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30조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하자 (일반·특별)교부세 2조2000억원을 감액했다. 정부의 이번 지방교부세 감액은 2023년에 이어 두 번째다. 2023년에는 56조원 세수결손을 이유로 지방교부세 7조2000억원을 삭감했다. 교부세는 지자체가 재량껏 쓸 수 있는 가용재원이다. 규모가 줄어들수록 각 시·도, 시·군·구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교부세 감소는 지자체에겐 ‘재정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 중앙정부가 2년 연속 교부세를 삭감하면서 지방정부(지자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 지자체는 지방채를 발행해 교부세 부족금을 메우거나 대형 사업을 중단하는 ‘땜질 처방’에 급급했다. 기획재정부, 행안부 등 중앙부처 의존도가 높은 지자체가 교부세 삭감으로 또 한 번의 재정 비상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위축 등으로 지방세수가 준 데다 교부세마저 삭감돼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이 심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2일 행안부 등에 따르면 올해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지 30년이 되는 해다. 올해는 지방자치 30주년이지만 지자체 재정 현실은 30년 전과 나아진 게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도지사, 시·군·구 단체장의 핵심 권한은 인사와 예산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가 중앙정부가 내려주는 예산과 행정 권한에 목을 매는 이유다. 재정자립이 요원한 지방정부는 단체장 역점 사업 추진은 물론 소신 및 공약을 뒷받침할 ‘실탄’(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장이 ‘임명직’인 중앙정부가 온갖 실권을 틀어진 상황에서 ‘선출직’ 단체장들이 주민보다는 정부, 국회 눈치를 봐야 하는 근본적 한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재정자립도 10%대… 지방채 발행 악순환
지자체는 얼마나 독자적인 살림 운용이 가능할까. 이를 나타내는 주요 지표는 2개인데 재정자립도와 재정자주도가 그것이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정부 스스로 살림을 꾸려가는 능력을 말한다. 지자체가 스스로 걷어들일 수 있는 세금에서 지방채를 뺀 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2023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40%로 최근 5년간 39∼40%에 머물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50%가 넘는 시·도는 서울·경기와 경기 화성시 3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 지자체는 연간 예산의 절반 이상을 중앙부처에서 충당하고 있다.
기초단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11.6%이다. 지난해 들어서야 겨우 10%를 넘겼다. 기초단체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곳은 경북 의성으로 6.6%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가 10%에 미치지 못한 지자체는 부산 영도구를 포함해 모두 47곳으로 파악된다.
재정자주도는 지방분권의 척도로 통한다. 지자체 일반회계 세입 중 수입과 자주 재원을 합한 것을 지방정부 예산 규모로 나눈 값이다. 재정자주도 수치가 높을수록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원이 많다는 뜻이다. 각 시·도 평균 재정자주도는 2019년 65%에서 2020년 58%로 뚝 떨어졌다가 지난해 62%로 다시 조금 올랐다.
명실상부한 지방자치, 지역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지방세 확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 비중은 8대 2 정도다. 이후엔 ‘2할 자치’ 목소리도 있다. 지난 30년간 지방세 비중이 20%대에 머물면서 지방정부의 재정은 누적 지방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의견도 계속되고 있다. 지자체 쟁점은 국비에 지방비를 매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재정이 바닥난 지자체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다. 충청권의 한 지자체장은 “공약사업을 하려면 지방비가 필요한데, 국비와 매칭할 사업비가 없어 3년째 검토단계에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방사무 30%대… 자치행정은 말뿐
재정뿐이 아니다. 각종 사무와 자치행정권이 여전히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는 상황에서 선출직 단체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무는 전체 사무의 30%대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가 대부분이다. 국토이용권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의 그린벨트 해제권한은 30만㎡에서 100만㎡로 확대했지만 정부 부처와 협의 등 권한은 제한적이다.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은 2018년 문재인정부가 출범, 관련 대통령직속 위원회가 신설되면서 논의가 본격화했다.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돼 중앙정부의 571개 사무가 지방정부로 이양됐다.
지방재정 확대와 지방분권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을 보면 헌법 제1조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선언적 명시와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 제2국무회의 성격의 국가자치분권회의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에서 의결정족수 미달로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지방분권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 30년을 맞은 올해 전국 시·도지사들이 지방자치, 균형개발과 관련한 내용을 헌법에 담는 개헌을 제안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인천시장)은 최근 “2월 중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점차 이양하며 각 지방의 잠재력을 살리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지방자치 30년을 맞은 올해 전국 시·도지사들은 지방분권 강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들은 공공기관 이름에 붙은 ‘○○지방’이라는 단어를 없애는 데 앞장서기로 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분권 시대를 이루기 위해선 이 같은 용어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도지사들은 현재 차관급인 시·도지사의 지위를 장관급으로 올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는 서울시장만 장관급으로 국무회의에 배석할 수 있다. 국무회의에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이 참석해 지방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빈 한국지방정부학회 회장은 “갈수록 중앙정부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수도권 집중화로 지방이 전멸할 위기에 놓였다”며 “지역소멸과 인구 감소를 막을 방법 중 하나는 지방정부 활성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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