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력 분산시켜 통 내구성 극대화
하찮은 드럼통도 과학·표준 있어
정치도 사회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겨울 골목 어귀, 드럼통 하나가 연기를 내뿜는다. 철판 위에 얹힌 주전자에서는 김이 피어오르고 그 곁에선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손을 녹인다. 기계음 대신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이다. 불꽃은 작지만 온기는 진하다. 공사장 한쪽, 농촌 마을 구석, 화단 아래 혹은 바비큐 옆. 드럼통은 그렇게 우리의 생활에 스며 있었다. 한때는 산업의 심장이었고, 나중엔 서민의 손난로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철통은 증오와 조롱을 담는 그릇이 되어버리더니 최근에는 급기야 정치인의 엉뚱한 퍼포먼스로 뉴스 화면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05년 미국 스탠더드오일의 기술자 헨리 베어한은 액체 연료를 운반하기 위한 금속 용기를 고안했다. 그는 철판을 둥글게 말아 용접하고, 상하단에 평평한 덮개를 붙여서 원통형 철제 용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게 마치 북(drum)처럼 생겼고 실제로 운반 중 북소리가 나기도 해서 드럼통(drum can)이라고 불렀다. 현대 산업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드럼통의 용량은 55갤런(약 206ℓ)이다. 물로 가득 채우면 206kg, 중유로 채우면 대략 150kg 정도가 된다. 보통 가정용 욕조의 평균 용량이 200ℓ 안팎이므로 드럼통 하나의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드럼통은 곧 전 세계 산업 물류의 표준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구조적인 효율성을 높인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헨리 베어한은 드럼통의 내구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리브(rib) 구조를 더했다. 즉 갈비뼈와 같은 장치를 만든 것이다. 리브는 구조물의 ‘갈비뼈’처럼 작용해 통 전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키고 찌그러짐을 방지한다. 곡면이 평면보다 압력에 강하다는 물리 법칙을 활용한 설계다.
우리나라에서 드럼통은 또 다른 삶을 살아왔다. 용도를 다한 드럼통은 버려지지 않고 재탄생한다. 시장 상인의 난로, 농촌의 대형 쓰레기통, 화단, 바비큐 통, 세면대, 물탱크, 닭장, 혹은 아이들의 장난감 수조로도 변신했다. 한겨울 공사장과 새벽 어시장에서는 언 손을 녹이는 난로가 되었으며, 시위 현장에서는 따뜻함과 연대의 중심이 되었다. 장인의 이름도, 디자이너의 서명도 없지만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지탱한 생활의 그릇이자 그들의 숨결을 담는 목격자였다.
이런 상징성을 가진 드럼통이 오늘날엔 인터넷 밈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겉은 무겁지만 속은 빈 소리만 요란한 존재, 둔탁하고 무책임한 무언가를 비유할 때 사람들은 드럼통을 떠올린다. 실제로 최근 한 판사 출신 정치인은 드럼통 안에 들어가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고 외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는 제1당의 강력한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연출로 영화 ‘신세계’ 속 시체를 드럼통에 유기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드럼통을 차용했지만, 그 방식은 죽음과 공포의 상징을 상대에게 투영한 폭력적 이미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계엄과 반란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심리적 폭행을 저질렀다.
이제 드럼통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스테인리스 용기, 플라스틱 컨테이너, 스마트 물류 시스템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언젠가 마지막 드럼통 하나가 골목 어귀에서 조용히 녹슬어갈 것이다. 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치며 잠시 멈출 것이다. 한 시대의 기억을 우리는 한 겹의 철판 안에 담아둘지도 모른다. 마지막 드럼통 안에는 무엇이 남을까? 따뜻한 연대일까, 아니면 차가운 증오일까.
드럼통 같은 사회를 꿈꿔 보면 어떨까? 음모가 판치는 복잡한 세상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굳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판검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드럼통 같은 사회 체계를 누구나 꿈꾼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드럼통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드럼통 구조를 지탱해주는 리브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고 내부의 균형을 유지하며 무너짐을 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갈비뼈 같은 것. 그런 정치가 있을 때, 공동체는 비로소 형태를 유지한 채 앞으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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