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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소방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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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24 22:57:27 수정 : 2025-08-24 22:57:26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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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대표적인 극한직업이다. 소방관들은 수백 도의 뜨거운 불길과 연기가 가득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거나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추락이나 건물 붕괴로 인한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2023년 소방공무원 5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소방관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 증상 등을 호소했다. 소방관의 절반 가까이가 적어도 1개 이상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 관리·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지난 10년 동안 소방관 13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를 넘어서는 ‘참사 트라우마’는 육체적으로 강인한 소방관, 구조요원의 정신마저도 무너뜨린다. 2022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구조 작업에 나섰던 소방관 2명이 최근 잇따라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구급요원 A(30)씨는 이태원에서 구조 활동을 적극 펼쳤지만, 참혹한 현장에서 입은 트라우마 탓에 여덟 차례의 심리 상담 및 약물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를 받던 중 ‘미안하다’는 메모를 남기고 집을 떠났고, 실종 열흘 만인 지난 20일 경기 시흥시 교량 아래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화재 진압대원 B(44)씨도 용산소방서 소속으로 이태원에 투입됐다가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경남 고성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등 심리적 문제를 극복해 보려 했으나 지난달 2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B씨는 지난 2월 공무상 요양(공무 수행 관련 부상·질병)을 신청했으나 인사혁신처에서 거절당했다고 한다. 두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은 단기에 그치는 현행 심리지원 체계, 공무상 재해 인정 기준의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소방관, 경찰관, 자원봉사자 등 재난 현장 근무자들을 대상으로 건강검진 및 치료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운영 기간이 2090년까지다. 그만큼 장기적 관리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서다. 우리도 두 소방관 사례를 거울삼아 참사 현장 투입요원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세밀한 정신건강 관리를 해줘야 한다. 소방관들의 희생·헌신만 치켜세우고, 정신적 고통은 등한시해온 게 아닌지 반성할 때다.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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