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곳간이 위태위태하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3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서 지난해 실질적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87조원으로 집계됐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것으로, 당해 연도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은 지난해 예산안(2.6%)보다 1.3%포인트 높은 3.9%에 이른다. 이럴 거면 적자 폭을 매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재정준칙 약속을 왜 했는지 묻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늘었던 재정 지원 조치가 종료되면서 전년 결산 때보다는 적자 폭이 줄었지만 작년 예산안과 비교하면 오히려 크게 악화했다. 경기 불황에 따른 역대급 세수 감소 탓이다.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51조900억원 감소한 344조1000억원에 그쳤다. 국가채무는 1126조7000억원으로 GDP 대비 50.4%에 달했다. 사상 처음으로 GDP 대비 50%를 넘었다.
앞으로가 문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늘고 있지만 세수 확대로 이어지기엔 규모도 작고 시일이 걸린다. 잇단 감세 정책도 건전재정 기조와 엇박자다. 올해부터 근로·자녀장려금의 대상과 액수 확대에 따른 소득세 감소 등으로 2028년까지 4조8500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로 2조원의 세금이 덜 걷히게 된다. 고물가·내수부진에다 저출산·고령화 등 재정 수요가 늘어나는 부분을 감안하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4%를 넘길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도 1인당 25만원의 민생지원금 등 수십조에 달하는 돈뿌리기 공약을 쏟아냈다. 재정의 역할을 앞세워 국채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대외 변수에 민감한 한국 경제는 예상치 못한 ‘블랙 스완’ 위기에 늘 노출돼 있다. 재정은 그런 상황을 대비한 국가의 최후 보루다. 과거 외환위기를 극복한 원동력도 전국민적 노력과 공적자금이라는 재정의 힘이었다. 22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재정준칙 법제화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재정 누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거대 야당도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포퓰리즘 입법을 중단해야 마땅하다. 재정은 신성장 동력 확충, 양극화 해소 등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최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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