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에도 의·정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는 변함없다”며 “2025년도 대입 일정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의료계가 조속히 합리적이고 통일된 안을 제시해달라”고 밝혔다. 총선 후 정부의 첫 입장 표명이다.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한 뒤 정부가 브리핑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해 일각에서 ‘유화론으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를 일축한 것이다.
전공의들은 어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그러면서 “박 차관이 경질되기 전까지는 절대 병원에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불법 행동으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불편을 초래한 의료계의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의협은 정부가 요구하는 통일된 의료계의 목소리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밝혔다. 대화는 안중에도 없고 힘으로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는 얘기다. 의료계가 막무가내식 집단행동을 언제까지 지속할 건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총선 후 첫 최고위 회의에서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를 거론한 뒤 “정부는 특정 숫자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의료계 역시 즉각 현장 복귀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 여야와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보건의료계공론화특위 구성도 재차 제안했다.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거대 야당으로서 시급한 민생 현안을 챙기는 건 긍정적이다. 여당 내에서도 의대 증원은 하되 숫자를 줄이는 등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야가 이 사안을 협치의 첫 시험대로 삼을 만하다.
정부와 의료계는 입장 차가 크고 감정의 골이 깊어져 실효적인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차관 경질,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같은 무리한 요구를 정부가 받아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정치권은 그동안 총선 표심을 의식해 의·정 갈등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꺼려 왔다. 하지만 이제는 총선이 끝난 만큼 여야가 적극 중재에 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피가 마른다”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요구, 국민들의 불안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 변경 가능성에 해당 대학과 수험생들은 혼선을 겪고 있다. 더 이상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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