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대 증원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의·정 갈등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대표는 그제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의대 정원 확대 같은 의료개혁은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에 민주당도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거대 야당 대표로서 가장 시급한 민생 현안에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준 건 평가받을 만하다. 의사단체들이 ‘의대 증원 백지화가 총선 민의(民意)’라고 억지를 부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할 정치적 근거를 확보해 다행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의사단체들은 요지부동이다. ‘초강경파’ 임현택 의협 새 회장은 “영수회담 결과는 십상시들의 의견만 반영된 것”이라며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의료문제를 이해하는 데 주변의 잘못된 목소리에 경도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부산 피습 사건’을 거론하며 이 대표가 의료정책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증원이든 감원이든 하자는 기존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여론을 애써 외면하는 편협하고 오만한 주장이 아닌가. 의사들의 집요한 저항에 분노를 넘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서울대·세브란스·고려대병원 의사들이 휴진하는 등 의대 교수들의 주 1회 휴진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참여 교수가 소수에 그쳐 다행이지만 진료가 연기된 환자들의 원성이 터져 나온다. 의사들 탓에 애꿎은 간호사·간병사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전국 32개 대학의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인원 제출이 어제 마감됐다. 증원 폭은 1500명대 후반∼1600명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각 대학은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수정하고 5월 말 신입생 모집요강에 이를 최종 반영한다. 교육부와 의대들은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입시 절차를 스케줄대로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의사단체들의 ‘증원 원점 재검토’ 주장은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정부에 압박을 가하려는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도 효력이 제한적이고, 상당수 의대에서 사실상 수업이 진행되는 등 투쟁 동력도 떨어지고 있다. 국민이 외면하고 거대 야당마저 의대 증원에 찬성함에 따라 의사들은 더 이상 버틸 명분도 실리도 없다. 지금 같은 강경투쟁을 이어간다면 국민·사회로부터 고립이 심화하고, 전공의·의대생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다. 이제 합리적인 출구전략을 마련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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