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어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2013년 이후 시행된 167회의 경력채용 과정을 전수조사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5월 감사에 착수한 지 약 11개월 만이다. 감사 결과 중앙 및 시·도 선관위 전·현직 각급 간부들이 자녀와 친인척을 특혜채용하는 등 무려 800여건에 달하는 규정 위반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김세환·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공정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선관위가 채용 비리가 판치는 복마전으로 변한 현실이 참담하다.
채용 비리 사례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김 전 총장 자녀의 경우 중앙 및 시·도 선관위로부터 채용단계를 넘어 교육, 전보, 관사입주 등에 있어 조직적 특혜를 받았다. 개인용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전산부서에 요구해 수령한 뒤 퇴직하면서 무단반출하기까지 했다. 김 전 총장은 인천 선관위에 지인을 방호직에 채용하라고 부당하게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전남 선관위는 2022년 2월 박 전 총장 자녀가 경력 채용면접에 응시하자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조작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위원들 간 정보를 공유하게 하고 외부 위원들에게는 순위만 정해 주고 평점표 점수는 비워둔 채 서명하게 했다. 이에 인사 담당자는 사전에 합격자로 결정된 6명의 자녀에게는 평점표에 점수를 높게 기재하고 나머지 응시자 4명은 임의로 불합격 처리했다. 충북 선관위는 송 전 차장으로부터 차녀의 채용 청탁을 받은 뒤 내부위원으로만 구성된 위원들이 모두 만점을 부여해 합격 처리했다. 경북 선관위는 간부의 자녀가 시험 응시자격에 결격사유가 있는데도 이를 은폐하고 서류시험에 개입해 합격처리했다. 감사원은 “경력직 채용을 손쉽게 국가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지적했다. 선관위 직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데도 선관위는 부정채용 비리와 관련해 사회적 공분이 들끓던 지난해 6월 헌법 제97조 등을 내세우면서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했다. 더구나 해당 감사의 정당성을 따지겠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했으니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선관위가 독립적인 헌법기관 지위를 누릴 자격이 있나. 검찰은 채용 비리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일벌백계해야 한다. 선관위가 자정능력을 상실한 만큼 감사원이나 국회 등 외부 기관 감시의 제도화도 필요하다. 뼈를 깎는 선관위 내부의 대수술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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