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의원들 퇴장한 뒤 강행처리
“중립 안 돼” 국회의장 압박 한심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특별검사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 야권이 표결 처리를 강행했다. 여야가 서로 양보해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합의 처리함으로써 협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직후의 일이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22대 국회에서도 거야의 입법 폭주가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이태원 특별법’을 여야 의원들의 초당적 지지로 가결했다. 전날 여야 간에 일부 핵심 쟁점을 고쳐 합의 처리하기로 타협이 이뤄진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시간 만에 민주당 등 야권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 표시로 퇴장한 가운데 채 상병 사건 특검법 통과를 밀어붙였다. 애초 본회의에 올리기로 합의되지 않은 안건이었다. 그런데도 다수당인 민주당이 의사일정 변경을 요구하고 민주당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이 받아들이면서 강행처리가 가능해졌다. 민주당의 행태는 ‘이태원 특별법’ 합의 처리로 싹을 틔우는가 싶었던 협치의 정신을 곧바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나 다름없다.
채 상병 사건 수사 핵심은 지난여름 수해 대민지원 현장에서 순직한 뒤 해병대 수사단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윗선의 부당한 개입이 있었는지 밝히는 것이다.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어제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을 불러 조사했고, 조만간 의혹의 핵심인 김계환 해병대사령관도 소환할 계획이다. 수사 결과가 나온 뒤 미진하다면 여야 간 협상을 거쳐 특검을 추진하는 방안이 순리일 것이다. 굳이 임기 만료가 채 1개월도 안 남은 21대 국회에서 날치기하듯 강행 처리할 일이었나. 대통령실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가운데 애초 야권의 의도가 이것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여야 사이에 중립을 지켜야 할 김 의장이 민주당 편을 든 점도 실망스럽지만, 민주당 의원 및 당선자들이 집단적으로 “의사일정 변경을 수용하라”며 김 의장을 압박한 것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다. 차기 국회의장 후보들은 앞다퉈 “중립은 없다”며 외치고 박지원 당선자(해남·완도·진도)는 유튜브 방송에서 김 의장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니 거대 야당의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민주당은 ‘거야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4·10 총선의 민의라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22대 국회에서도 입법 폭주를 계속한다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성난 민심의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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