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윤씨 소환도 못해 경찰이 50대 건설업자의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을 수사한 지 17일로 한 달이 다 됐지만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수사가 지지부진하면서 수사팀 문책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권 편향 논란을 빚은 ‘국정원녀’ 수사에 이어 이번 수사까지 ‘헛발질’로 결론날 경우 수사권 독립 등 핵심 현안에서 경찰 입지는 한층 약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달 건설업자 윤모(52)씨가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성접대 등 로비를 하고 그 대가로 사업과 관련된 이권을 따냈다는 의혹이 일자 같은 달 18일 전격 내사 착수를 발표했다.
여성사업가 권모(52)씨가 윤씨를 강간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면서 촉발된 이번 사건은 윤씨가 강원 원주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유력인사 성접대 동영상을 촬영해 보관 중이라는 주장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사안의 성격상 여론의 관심은 성접대와 동영상 등 말초적인 부분에 집중됐다.
경찰은 “국민적 의혹을 신속하게 규명하겠다”며 관련 참고인들을 잇따라 소환조사했다. 수사 과정에서 사퇴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성접대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내사 착수 이틀 만에 수사로 전환하는 등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하지만 수사는 권씨가 제출한 2분30초 분량의 성접대 추정 동영상이 등장 인물을 특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드러나면서 난관에 부닥쳤다. 한 핵심 참고인은 경찰 조사에서 김 전 차관을 성접대했다고 밝혔다가 언론 인터뷰에서 말을 뒤집었다. 최초 동영상 원본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핵심 참고인은 “발견된 것은 음악CD”라며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를 부정했다. 자칫 이번 사건이 ‘추문’ 수준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수사팀은 “성접대는 윤씨의 여러 불법행위 의혹 중 곁가지에 불과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윤씨와 유력인사들 간의 대가성을 전제로 한 불법행위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심 피의자인 윤씨 소환 일정도 잡지 못하는 등 좀처럼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성접대는 애초부터 형법 적용이 어려운 사안이었다”면서 “사건을 이렇게 벌여놓고 어떻게 출구를 찾을지 걱정”이라고 고민의 일단을 밝혔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칼은 칼집에서 뽑은 이상 상대를 베지 못하면 반드시 되돌아온다”면서 검찰발 역풍을 우려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