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선명 통일교 총재는 세계평화와 도의사회 구현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문 총재가 2006년 8월20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천주평화 조국향토 천지환원 승리석방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가지쿠리 겐타로(梶栗玄太郞) 일본 통일교회 회장은 담화를 발표해 “문 총재께서 좀 더 활약해주시길 바랐지만 성화 소식을 듣게 돼 유감이 아닐 수 없다”며 “세계 평화를 위해 낮과 밤에 초인적인 행보를 해오신 문 총재의 생애에 마음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올린다”고 말했다.
미국 브리지포트대학의 레슬리 기어리 대변인도 “대학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 총재께서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며 “문 총재의 가족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 |
워싱턴 연설 문선명 총재(왼쪽)가 1976년 10월4일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워싱턴DC 모뉴먼트 광장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은 특별보좌관 자격으로 영어통역을 하던 박보희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
NYT는 문 총재를 한국의 복음전도사(evangelist)이자 기업가, 메시아로서 합동결혼식으로 유명한 종교 운동을 창시했다고 보도했다. 또 에일린 바커 런던경제대학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해 “1960, 70년대 서구에서 새 종교 운동과 대안 신앙의 큰 흐름을 주도했다”며 “세계 지도자들에게 다가가고 신문사를 사들이고 수많은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나 반대자들은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한 것으로 폄하했다”고 평가했다. NYT는 특히 문 총재가 열렬한 반공주의자, 우익 지지자로서 1970년대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와 밀접히 관계를 맺었다고 회고했다.

일본 언론은 문 총재를 ‘통일교회의 창시자’로 부르며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전개했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통일교회의 문선명 서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총재의 성화 소식과 1943년 와세다대 전기학부를 졸업하고 1958년 일본에 통일교회를 세우는 등 일본과의 인연을 자세히 전했다.
정진수 기자, 워싱턴·도쿄=박희준·김용출 특파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