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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중심에서 만나다'…제주 납읍 난대림

입력 : 2013-01-25 02:00:39 수정 : 2013-01-25 02: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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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등등한 한파, 쉴새없이 내리는 눈발에 잔뜩 움츠러든 심신…
상상처럼, 계절을 잊은 싱그러운 녹음 속에서 초록에너지 충전하러 제주로…
겨울의 한복판, 도시는 회색으로 변한 지 오래다. 거리는 을씨년스럽다.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매서운 추위에 몸과 마음이 모두 움츠러들었기 때문일 게다.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가로수는 도시인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한다. 이럴 때 그리워지는 게 싱그러운 녹색의 숲이다. 녹색은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제주 해안가 곳곳에는 한겨울에도 따스한 초록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난대림이 잘 보전되어 있다.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상록활엽수가 요즘도 생기 넘치는 잎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이다. 한겨울 서울이라면 온실 수목원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활엽수가 이곳에서는 울창한 숲을 만들고 있다.

제주시 납읍리의 난대림은 한겨울에도 짙은 초록의 활엽수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다. 이 푸른 숲 속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겨우내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금세 초록의 감흥에 젖게 된다.
#계절을 잊은 신령한 숲, 납읍 난대림

제주의 여러 난대림 중에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의 난대림이다.

한겨울에도 초여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이곳은 계절이 멈춘 초록의 공간이면서 숲의 정령이 깃들여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한 분위기의 숲이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단숨에 겨울을 잊게 하는 상록의 숲이 펼쳐진다. 짙은 초록의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한낮에도 짙은 녹음이 깔려 숲은 어둑어둑하다.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 사이를 힘들게 비집고 들어온 햇살을 받은 초록의 이파리는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우리 땅의 겨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풍경들이다. 

납읍 난대림의 잎들은 한겨울에도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른다.
천연기념물 375호인 납읍 난대림의 규모는 3만3980㎡(1만여평)에 달한다.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후박나무·동백나무·생달나무·종가시나무·석나무·모실잣나무들이 가지를 뒤틀고 촘촘히 서 있다. 이 나무들을 송악·후추등·마삭줄·꽁짜개덩굴의 줄기가 감고 올라가 숲은 더 짙은 초록이 된다.

납읍 난대림은 마을사람들에게는 신성한 당숲이었다. 그래서 지척에 촌락이 형성돼 있었어도 땔감 등으로 훼손되지 않고 오랜 시간 이같이 보전될 수 있었다.

숲 가운데에는 기와를 올린 당집이 서 있다. 숲의 신령을 모시던 곳으로, 당집 앞에는 거대한 곰솔이 우뚝 솟아 있다. 이 당집도 규모가 작지 않고, 그 앞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이 너른 것으로 보아 이곳의 제사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모였을 것이다. 

납읍 난대림 속에 서 있는 당집. 숲의 신령을 모신 곳이다.
예전에는 접근이 어려운 신성한 곳이었겠지만, 지금 이 숲은 마을 사람들에게 친근한 휴식공간이다. 이제는 ‘금산공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 숲 속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흙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파른 비탈에는 어김없이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올레길 15코스가 지나는 길목에 있어 배낭을 멘 ‘올레꾼’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이 숲 바로 앞에는 납읍초등학교가 있다. 숲은 방과후 이 학교 아이들의 놀이터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예닐곱 아이들이 나무데크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외투를 벗어 놓았다. 한겨울에 조금만 뛰어다녀도 땀이 날 정도로 이 숲은 따뜻한 공간이다. 

천지연 폭포와 그 주변의 난대림.
#폭포수와 어우러진 천지연·천제연 난대림


제주에는 납읍리의 것 말고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난대림이 두 곳 더 있다.

서귀포시 천지동에 있는 천지연 난대림(천연기념물 제379호)은 천지연폭포 주변 숲을 말한다. 제주 최고 비경 중 하나인 폭포가 워낙 유명해 제주를 여행한 사람 대부분은 한두 번씩 가 보았겠지만, 이곳의 숲을 목적지로 삼아 간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폭포까지 오가는 산책로는 영락없는 남국의 숲길이다. 폭포는 한겨울에도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다. 폭포에서 흘러내린 계곡물 소리와 초록의 잎 사이로 드는 따사로운 햇살은 겨우내 우중충했던 기분을 확 바꿔놓는다. 

천지연 폭포 주변의 난대림은 1월 중순에도 초록빛을 띠고 있다.
천제연 난대림(천연기념물 제378호)은 서귀포시 중문동의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좁은 포장도로가 나 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인간의 손길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말 그대로 원시의 숲이다. 숲 중앙에 천제연 폭포가 있다.

도시 빌딩 사이로 몰아치는 칼바람에 지쳤거나, 봄이 언제 오나 기다리며 달력을 자꾸 들춰본다면 제주를 찾아 이 난대림 속을 걸어보면 어떨까 싶다.

제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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