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다.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퇴직 시점도 이와 비슷하다. 잡코리아가 공개한 남녀 직장인 833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예상한 퇴직 연령은 남성 54세, 여성 50세로 집계됐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81.9세)보다 30년가량 앞선 것이다.
이처럼 긴 여생을 살아야 하는 50대 은퇴자들의 노후생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경제 저성장과 인구 고령화 추세가 맞물리면서 50대 은퇴자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퇴직 초기에는 앞만 보며 달려온 과거를 돌아보며 자유를 만끽하기도 하지만 ‘대책 없는 자유’는 곧 ‘갑갑한 굴레’로 변모해 불안감을 키운다. 그래서 재취업 자리를 기웃거려 보지만 정부의 고용정책이 청년 실업난 해소 쪽에 비중이 쏠려 이마저도 쉽지 않다. 별수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어 봐도 퇴직금이나 날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최근 ‘50세 이상 자영업자의 거의 절반(44.7%)이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국민연금연구원)이란 조사도 있었다. 대책 없이 은퇴할 경우 노후에 마주칠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욱 큰 문제는 대부분 이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정작 노후 준비는 빈약하다는 것이다.
◆부모·자녀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
전문가들은 일찍부터 노후설계를 시작하고 공적·퇴직연금 외에 장기 금융상품에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위로는 70∼80대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20∼30대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지금 50대에게는 먼 나라 얘기다.
공기업에서 본부장급으로 근무하며 내년 2월 퇴직을 앞둔 박모(55)씨는 남몰래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 은퇴 이후 진로를 걱정하다가 스트레스가 심해져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대출 상환에다 치매를 앓는 노모의 약값과 간병인 비용 등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돈만 매달 200만원 남짓이나, 국민연금은 월 130만원 정도밖에 안 되고 이마저도 6년 후에나 수령할 수 있다. 퇴직금은 대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와 결혼비용에 쓰기로 일찌감치 부인과 합의한 상태다. 박씨는 “백방으로 새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는데 대부분 관리자가 아닌 실무급을 원하고 있어 고민”이라며 “은퇴 준비는 생각할 엄두를 못 내겠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50대의 위기는 청년·노인문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한 대책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50대는 치열한 경쟁과 급격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동시에 겪은 만큼 그 누구보다 부모·자식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이 높은 세대”라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실버푸어’, ‘오포세대’도 모두 이들의 부모·자식 세대라는 점에서 50대를 위한 사회적 연대성을 재정립하고 정책적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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