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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 소재 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김모(30)씨는 올해 초 주변 지인 4명과 ‘이민계(移民契)’를 만들었다. 한국을 떠나 북유럽 국가에 정착할 밑천을 함께 모으자는 취지다. 김씨는 “탄탄한 복지와 수준 높은 교육, 깨끗한 자연 등을 가진 북유럽 국가 중 한 곳을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주말마다 자동차정비학원에도 다닌다. 일반이민에 비해 기술이민은 영주권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자동차정비 기능사·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다.
‘한국이 싫어서’ 해외로 떠나거나 이민을 계획하는 20∼30대 청년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를 지옥에 비유한 ‘헬조선’으로 칭하고 ‘흙수저 계급론’에 좌절한 ‘N포 세대’ 청춘들이 ‘한국 탈출’을 꿈꾸고 실행하려는 것이다.
설문과 달리 한국을 떠나는 청년은 실제로 늘었을까.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이주 인구는 감소하는 추세다. 1962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이민자 수는 1976년 4만6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서서히 감소하다가 2012년부터 급감해 2014년 7250여명으로 떨어졌다. 다만 외교부 통계는 해외이주 신고자의 연령대별 구분을 따로 공개하지 않아 20·30세대의 이민 증감 여부는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민컨설팅 현장에서는 젊은층의 이민상담이 확연히 늘었다는 목소리가 많다. 해외이민 전문 컨설팅업체인 국제이주공사 관계자는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최근 이민을 문의하는 젊은층이 확실히 늘었다”며 “올해만 해도 지난해보다 관련 상담이 두 배 정도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는 투자이민 같은 중·장년층의 상담이 많았는데, 요즘은 젊은 세대의 취업이민 상담이 그들을 넘어섰다”고 귀띔했다.
대학입학 대신 자격증을 취득해 20대 초반부터 이민을 시도하는 청년들도 있다. 대학 4년 동안 상당한 액수의 등록금을 내고 졸업을 해도 취업을 장담하기 어렵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은 더더욱 바늘구멍이라 일찌감치 기술이민을 꿈꾸는 것이다.
지난해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 A씨는 사기를 당해 이민의 꿈을 접었다. 용접공인 A씨는 호주에서 연봉 1억원인 일자리를 1년 이내에 구해주고 영주권도 받을 수 있다는 해외취업 소개업체에 속아 알선료 4000만원만 날렸다. 그는 “숙련공 경력을 가져도 연봉이 3000만원도 안 되고 기술자를 홀대하는 한국사회가 싫어 이민을 꿈꿨는데 사기를 당했다”며 망연자실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는 취업을 희망하는 업체와 현지 사정에 대해 직접 확인하면서 구직절차를 진행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국을 등지고 이민을 결심하는 20·30세대의 등장은 한국 현실에 대한 ‘실망감의 발로’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으로 분석된다. 김홍중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전망의 부재’가 그 원인이 아닌가 싶다”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좌절감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청년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바라본 표면적인 판단에 그쳐선 안 된다”며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청년들의 목소리, 현장 목소리부터 들어보고 그에 맞는 현실적인 처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선영·남혜정·이창수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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