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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지푸라기' 잡듯 참여한 환자 急死 날벼락

관련이슈 신약 임상실험의 숨겨진 진실

입력 : 2008-01-23 21:55:36 수정 : 2008-01-23 21: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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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암환자 '의문의 죽음'

국내 임상시험의 부작용 실태에 대해선 그동안 정부도 공식 자료를 공개한 적이 없으며, 언론도 이를 심층적으로 다룬 적이 없다. 제약사와 병원 임상시험센터는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내용에 대해선 쉬쉬할 뿐 부작용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꺼렸다. 세계일보 취재팀은 지난 6월 초부터 여러 환우회의 도움으로 다수의 피해사례를 입수했으며, 임상시험 실태를 파헤치고자 이들 사례의 심층 추적 및 분석을 시도했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송복헌씨 사망 사례는 병원과 제약사에 의해 피험자 권익이 어떻게 침해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여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 기법으로 상세히 소개한다.



‘의문의 죽음’이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불상(자세히 알 수 없음)’. 취재팀은 지난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임상시험 도중 사망한 송복헌(사망 당시 64세)씨의 부인 이순우(54·여)씨와 아들 재현(27)씨를 지난 7월 19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지 꼭 1년 만이었다. 이씨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손사래부터 쳤다. 하지만 다른 환자를 위해 실상을 알려 달라는 계속된 설득에 조금씩 ‘가슴속 응어리’를 털어놓았다.

그는 임상시험이 뭔지 잘 알아보지 않고 남편에게 참여하라고 권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남편은 시험 당시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조용한 시골에서 마음 편하게 주변 정리를 할 걸 그랬어요. 그렇게 아프다는데 ‘의사가 나아질 거라고 했으니 참으라’고만 했으니… 너무 고통스럽게 떠나보낸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이씨는 남편의 사인이 시험약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 의료진 과실 때문인지만이라도 알게 해 달라고 했다. 이에 취재팀은 유가족과 전문의 조언 등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뒤 병원과 제약사 등을 상대로 송씨 죽음 이면에 숨겨진 의문을 풀어봤다.



# 2006년 2∼8월 의문의 죽음

송씨는 지난해 2월 간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 찾아간 지방병원에서 “바로 수술만 하면 완치 가능성이 90% 이상”이라는 말을 듣고 간암 치료로 유명한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5월 수술날짜를 잡아두고 암 진행이 급속히 빨라졌다. 담당 레지던트는 “앞으로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며 “국내에는 듣는 항암제가 없는데 그냥 퇴원하겠느냐, 아니면 임상시험이 있는데 참여하겠느냐”고 말했다. 남편은 처음엔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생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라는 가족의 설득으로 결국 참여를 택했다.

6월 2일 첫 시험약을 투여받은 송씨는 이후 며칠간 설사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설사 부작용이 있다고 사전에 말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3주 뒤 2차 투약을 하자 증세가 더욱 심해졌다. 매일 2∼15차례 설사를 하면서 살이 6∼7kg이나 빠졌다. 의료진이 지사제 투여량을 높였지만 듣지 않았다. 그래도 의사는 나아질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겨우 설사가 멎자 이번에는 장 마비로 배설이 안 되면서 온몸이 부풀어올랐다.

7월 19일, 설사가 멎은 지 이틀이 지난 이날 오전부터 송씨는 전에 없이 심한 고통을 호소하다가 끝내 숨을 거뒀다. 임상시험 참여 48일 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6개월은 살 거라 믿었던 유가족은 돌연한 죽음 앞에 통곡했다. 정확한 사인을 알고 싶었지만 담당 의사는 “급사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말끝을 흐렸고, 시험약을 만든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는 병원에 알아보라는 말만 했다.

너무나 분해서 소송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자문을 한 변호사는 “동의서에 서명했기 때문에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며 말렸다. 결국 병원에서 ‘도의적 책임’으로 지급한 ‘장례비’ 400만원을 받는 것으로 이 일은 잊혀졌다.
12일 이순우씨가 서울 관악구 자택에서 남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 2007년 7월 19일∼8월 8일 죽음의 베일을 벗겨라

취재팀은 이씨 아들 재현씨와 함께 송씨의 사인부터 추적했다. 우선 아산병원에서 의무기록을 떼 전문의들에게 자문했다. 임상시험 과정에서 종양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미뤄 암 진행에 의한 사망은 아니었다.

또한 임상연구자료 조사 결과 송씨에 투여된 약물(파투필론)의 경우 임상시험 도중 22명이 사망했고 그 중 5명은 약과 직접 관련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취재팀과 가족은 주치의였던 A교수를 찾아갔다. A교수는 “보통 사망진단서는 바로 발행되는데, 고인은 예상치 못한 급사였기에 사인을 바로 결정할 수 없었다”며 “여러 정황상 패혈증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시험약과의 연관성을 묻자 “연관돼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부실한 보상 처리에 대해서도 따졌다. 아들 재현씨는 1년 전 받았던 동의서를 꺼내 보여주며 “여기에는 ‘시험약에 의해 상해를 입을 경우 의료비용을 지급할 것’이라고 돼 있는데, 그러면 우리에게 의료비를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A 교수는 “제약사의 보상 규정에는 ‘피험자에게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이미 알려진 부작용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고 말했다. 설사는 예측 가능한 부작용이었다는 말이다.

송씨 가족이 받은 동의서에는 어디에도 그런 보상 예외 조항이 없었다. 재현씨가 “그런 보상 규정에 우리가 동의한 적 없다”고 따지자 A교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취재팀은 다음날 노바티스에 문제를 제기했다. 송씨 가족에게 제공한 동의서의 규정대로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노바티스 측은 “어쨌든 병원에서 장례비를 보상해주지 않았냐”고 무책임하게 답했다.

하지만 동의 과정에서 부작용 피해와 보상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윤리 위반을 계속 따져 묻자 노바티스는 다음날 “오래전 일이라 착오가 있었다. 보상해주겠다”고 알려왔다.

한여름 20여일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송씨의 사인도 알 수 있었고, 보상의 권리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씨와 아들 재현씨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다. “임상시험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데 환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뿐 아니라 ‘위험’도 충분히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환자나 가족들은 의사 말은 무조건 신뢰하니까요. 다른 환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비극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특별기획취재팀=김동진·우한울·박은주·백소용 기자 special@segye.com





◇송복헌씨의 사망진단서. 직접 사인이 ‘불상’으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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