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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가짜약도 투여… 임상시험은 치료가 아니다

관련이슈 신약 임상실험의 숨겨진 진실

입력 : 2008-01-23 22:05:36 수정 : 2008-01-23 22: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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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0건 들여다보니…


취재팀은 국내 임상시험 기관에 대한 현장 취재와 시민 제보 등으로 임상시험 사례 10건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 사례를 다시 환자 가족과 주변 지인의 증언, 담당 의료진의 해명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유형별로 분석했다. 〈그래픽 참조〉 분석 결과는 환자와 그 가족이 가지고 있는 임상시험 상식을 뒤엎었다. ‘마지막 희망’이라 여겼던 기대와 달리 시한부 환자에게 제공된 약은 치료제가 아니었다. 또 일부 시험은 정부 승인도 받지 않고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팀은 이번 사례 추적에서 드러난 ‘임상시험에 대한 오해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1 ‘임상시험은 치료인가?

한국다국적제약산업협회(KRPIA)는 홍보 자료에서 임상시험이 환자의 치료 기회를 넓혔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시한부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점에서 임상시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예컨대 위약(가짜약) 처방이 대표적이다. 일부 임상시험은 시험약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한 환자군에는 진짜약, 다른 환자군에는 위약을 처방해놓고 양측의 경과를 비교한다.

따라서 치료 희망을 갖고 참여한 피험자라도 가짜약 처방군에 포함된다면 치료 기회를 잃을 수 있다. 결국 ‘임상시험=치료’는 잘못된 상식이다.

집중추적 사례 1번 JSH 피험자도 임상시험을 치료로 잘못 알았다. 그는 수명 연장의 희망을 갖고 참여했지만 투약 후 한 달 안에 유명을 달리했다. 그에게 투여된 시험약은 항암제가 아니라 암 부작용을 완화하는 보조치료제였다. 사례 5번 피험자는 시험을 마쳤지만 임상시험센터에서 자신에게 사용된 임상약물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현재 적절한 후속 치료를 받는지 모르는 상태다.

# 2 마케팅의 시작, 임상시험

일부 제약사와 임상센터는 치료보다 마케팅 차원에서 임상시험을 활용하고 있었다. 6번 KHJ(10)는 과잉행동장애치료제(ADHD) ‘스트라테라’에 학습능력 향상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하는 임상시험 참여자다. 학습능력 향상 효과가 입증될 경우 한국릴리는 약 판매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약은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 ‘머리가 좋아지는 약’으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서울아산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 위원인 A의사는 “정상적인 아동에게 처방하는 약이 아닌데, ‘공부 잘하게 하는 약’인지 보는 것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임상시험의 또 다른 오해는 모든 시험약이 ‘새로운 약(신약)’은 아니라는 점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올 7월 현재 진행 중인 항암제 임상시험 62건 중 대부분이 기존 치료제의 새로운 효능 입증이나 용법 확대를 위한 연구이다. 제약사는 이런 연구를 통해 기존 치료제의 특허 기간을 연장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오한석 사무국장은 “기존 치료제의 적응증(효능) 확대 연구는 국내 키닥터(국내 최고 권위자)에게 할당된다”며 “이는 제약사가 약 홍보·판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인 행보”라고 말했다.

# 3 임상시험 부작용, 보상된다 ?

피험자들은 부작용(이상약물반응·ADR)이 발생하면 당연히 보상받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임상시험은 심한 부작용이 발생하더라도 ‘예상된 ADR’라면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더구나 부작용 보상 기준도 제약사마다 제각각이어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추적 사례 중 ADR 발생 시 치료행위와 별도의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사례(7번 HSC)가 있는가 하면,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은 사례(8번 CJH) 도 드러났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피험자는 보상 기준을 잘 살피고 나서 참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도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는 임상시험은 그 자체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4 임상시험은 합법이다 ?

취재팀은 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임상시험’ 사례(8번 CJH)도 만날 수 있었다. 연구자와 병원 측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는 “기존 연구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이기 때문에 따로 정부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 사례는 국내 임상시험이 국제적으로 합의된 임상연구윤리 기준(ICH-GCP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으며, 행정 당국의 감시도 소홀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김명희 교수는 “최근 2∼3년간 국내 임상시험 건수가 급격히 늘면서 연구자들이 질보다는 양에만 급급한 것 같다”며 “이제 엄격한 윤리 기준을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균형을 맞춰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동진·우한울·박은주·백소용 기자 speci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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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제약사가 개발한 새로운 약물(시험약)이 얼마나 안전한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임상시험은 단계별로 1상, 2상, 3상으로 나뉨.(그래픽 참조)

◆이상약물반응(ADR·Adverse Drug Reaction)=임상시험에서 발생한 유해하고 의도되지 않은 반응으로 시험약과의 인과관계를 배제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함. 약과의 인과관계가 없는 유해반응은 이상반응(AE·Adverse Event)이라고 함.

◆ICH-GCP 가이드라인=호주, 캐나다, 북유럽, 유럽연합, 일본, 미국,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임상시험 관리기준을 고려해 만든 국제 표준 가이드라인.

◆위약대조시험=피험자 한 무리에는 시험약을, 다른 무리에는 가짜약을 처방한 뒤 치료 경과를 확인함으로써 시험약 효능을 확인하는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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