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임상시험 실시현황(2007년 2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국내 피험자 3명 중 2명(70%)이 다국적 제약사 임상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이들이 국내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진출은 산업 측면에선 득이 될지 몰라도 국민보건과 생명윤리 차원에선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에 이들의 국내 진출 현황과 실태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다국적 제약사, ‘한국 몸’ 사냥 중=미국 국립보건원(NIH) 집계(clinicaltrial.gov)에 따르면 한국 폐암환자 대상 다국적 제약사 항암제 임상시험(3상)은 11건으로 유럽(26건), 미국(21건), 캐나다(12건) 등에 이어 세계 네 번째이며 아시아에선 가장 많다. 폐암 치료제가 세계 항암제 시장에서 가장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아시아의 임상시험 허브’로 떠오른 셈이다.
다국적사에 한국은 군침 도는 임상시험 시장이다. 아시아의 다른 경쟁국보다 임상시험 연구인력과 인프라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서울대의대 박병주 교수(예방의학교실)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시험 비용이 높고 중국은 연구 질이 떨어져 다국적 제약사들이 기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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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은 무엇보다 한국의 피험자 모집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식약청 관계자는 “신약 개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피험자 모집인데, 국내 병원은 외국에서 실패한 피험자 모집까지 떠맡을 정도로 빠르고 쉽게 모집한다”고 말했다.
다국적사에 ‘시간’은 곧 ‘돈’이다. 임상시험을 빨리 끝낼수록 수익이 그만큼 더 커지기 때문에 한국 같은 환경의 나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의료보건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 래리 사시크’는 취재팀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어떤 신약은 하루 수백만 달러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임상시험 기간을 줄여 개발시기를 앞당기려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시험은 3세계, 수혜는 선진국이…=다국적사 임상시험이 늘면 늘수록 국내 환자들은 그만큼 더 큰 위험을 떠안게 된다. 반면 신약 개발 수혜는 대부분 선진국 환자에게 돌아간다.
이는 다국적사의 마케팅 목표와 무관치 않다. NIH에 따르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진행 중인 항암제 임상시험(3상)은 현재 309건으로 전체(753건)의 41%에 달하지만, 이 지역 의약품 시장규모는 세계시장의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선진국에서 소비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국적사가 개발도상국 등에서 실시하는 임상은 대부분 선진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예컨대 국내는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발병률이 높은 위암은 이들의 관심 밖이다.
식약청에 따르면 2007년 2월 현재 진행 중인 국내 임상시험에 참여한 피험자 7630명 가운데 위암 환자는 357명인 반면 폐암 환자는 두 배가 넘는 757명이다. 다국적사가 한국인의 몸을 이용해 미국과 유럽에서 발병률 1위인 폐암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 465건 중 다국적사의 임상이 274건(58.9%)이나 될 정도로 이들이 국내 임상시험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이대호 교수(종양내과)는 “미국에선 다국적사가 ‘시장 중심’의 임상시험을 하는 반면 정부는 국민 보건 차원의 순수 연구자 임상을 지원해 서로 균형을 맞춘다”며 “우리 정부도 국민 보건을 위한 연구자 임상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동진
우한울·박은주·백소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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