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승리를 자신한 암피트리온은 성으로 쳐들어갔다. 이제 불사의 존재도 아니고, 신으로부터 약속받은 모든 특혜가 사라진 프테렐라오스는 제대로 힘 한번 쓰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다음날 암피트리온은 무사히 성을 함락할 수 있었다. 프테렐라오스는 딸이 저지른 일로 결국 불사신의 특혜를 누리지 못하고 보통의 인간처럼 죽음을 맞고 말았다. 암피트리온은 약속대로 그 섬을 자신을 도왔던 이들에게 분배했다. 그 결과 케팔레니아는 케팔로스에게 주었고, 그 밖의 땅은 헬레이오스가 차지하도록 했다.
그렇게 하여 암피트리온은 사랑하는 연인 알크메네의 원수를 보기 좋게 갚은 셈이 되었다. 그는 서둘러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 돌아가면 꿈에도 그리던 연인을 만난 그토록 열망했던 그녀와의 잠자리를 함께 하게 될 것이었다.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가까이 하지 못했던
아련했던 날들이 그의 뇌리 속을 스치며 지나갔다. 단숨에 라도 그는 연인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한편 그 때의 상황은 의도된 일이기도 했다. 마침 제우스는 한 바탕 전쟁을 치러야할 판이었다. 제우스는 우주의 권력 싸움에서 필히 기간테스라고 불리는 기가스들과 일전을 치러야만 했다. 거인족인 이들은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허리 밑은 두 마리의 뱀의 모습을 한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었다. 이들은 크로노스가 잘라버린 우라노스의 남근으로부터 흘러나온 피가 대지에 떨어져 태어난 족속이었다. 제우스가 티탄 족을 물리치고 그들을 지하 세계에 감금시켜버리자 가이아는 화가 나서 아들들을 싸움에 참가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에 이들을 물리칠 용감한 사람을 낳게 하려고 제우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있을 기가스들과의 싸움에서 신들을 구할 영웅을 낳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서 알크메네를 점찍어 놓았! 던 것이다. 그녀는 인간으로서는 제우스의 마지막 연인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알크메네를 임신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 요량으로 제우스가 의도한 싸움에 암피트리온이 말려들었던 셈이다.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이 전쟁에 나간 틈을 타서 그녀와 관계를 맺으려 했다. 그렇게 하여 강하고, 천하무적의 영웅을 탄생시켜 자신을 대신하여 싸움을 할 생각이었다. 물론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여자를 밝혔던 그로서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제는 인간들이 많이 늘어나서 인간인 여자와는 이번이 마지막 동침이기도 했다.
암피트리온이 막상 전쟁에 나서자 알크메네는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녀도 이미 마음 깊이 암피트리온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돌아오면 그의 넓고 강한 가슴에 안겨 사랑을 속삭일 생각을 하면 저절로 미소가 온 얼굴에 번지기도 했다. 그녀는 자주 바닷가에 나가서 암피트리온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약간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우수에 잠긴 듯도 한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녀의 눈은 남자들이 좋아하는 촉촉하게 젖은 눈이어서 보는 이들에게 더한 매력을 주었다.
제우스는 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녀가 마음을 열지 않을 것임을 간파하고 있었다. 제우스는 변신에 능했던 터라 재빨리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제우스의 모습은 영락없는 암피트리온이었다. 그렇게 변장한 채로 제우스는 알크메네에게 모습을 나타냈다. 이제나 젖ㅈ저제나 암피트리온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촉촉한 눈에 눈물이 그렁하게 고인 채로 맞이하러 나왔다. 그녀로서는 지금 앞에 있는 존재가 제우스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알크메네는 너무 기뻐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암피트리온의 모습을 한 제우스의 품에 안겨 달콤한 순간에 빠져들었다. 한 밤이 짧도록 둘의 달콤한 밤은 지속되었다.
달콤하고 상큼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을 때, 알크메네가 잠에서 깨었을 때는 이미 제우스는 떠난 후였다. 하지만 알크메네는 지난밤에 기쁨을 주었던 사람을 암피트리온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곱게 치장하고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암피트리온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알크메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알크메네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젯밤에 격렬한 밤을 보낸 것에 대한 약간의 쑥스러움만 있었을 뿐, 이미 얼마 전에 돌아온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암피트리온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그는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토록 그가 원했던 그녀와의 사랑의 행위를 나누고 싶었다. 그는 서둘러 침실로 들어가며 그녀를 이끌었다.
“알크메네, 난 너무도 그대를 안고 싶구려. 어서 들어오구려.”
그러자 알크메네는 살짝 뿌리치며 말했다.
“어제 밤에 그렇게 격렬한 밤을 보내고도 무슨...............”
하지만 암피트리온의 욕정은 그녀를 그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이제껏 참아왔던 욕정을 맘껏 발산했다. 그렇게 폭풍과 같은 밤이 지나자 암피트리온은 어제 그녀가 한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가 꿈을 꾼 것이 아니라면 자신과는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암피트리온은 테베에 사는 테이레시아스라는 예언자에게 가서 물었다. 그러자 이 늙은 예언자는 그에게 사실을 말해 주었다.
“으음. 제우스가 자네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보낸 걸세. 제우스가 훌륭한 영웅을 낳기 위해 자내의 아내를 이용한 걸세. 그래서 밤의 길이를 평소보다 3배나 늘리기도 했으니 자내의 아내가 자네에게 그렇게 말했던 걸세.”
암피트리온은 그제야 의문을 해결했지만 한편으로 분노가 타올랐다. 그토록 자신이 아껴주었던 알크메네가 다른 작자에게 먼저 몸을 허락하다니 너무도 억울했다. 하지만 그가 인간도 아닌 제우스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암피트리온은 맥이 풀렸다.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알크메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그녀와 헤어져야 할지 그대로 덮어두고 살아야 할지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알크메네는 제우스를 암피트리온으로 생각하고 그를 받아들였을 뿐이니 그녀 또한 죄를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녀와 헤어진다는 것도 그녀에게 정성을 들이고 시간을 빼앗긴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그 사실을 가슴에 묻은 채로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그녀는 그날이래로 쌍둥이를 임신했다. 출산이 가까워지자 제우스는 기대에 부풀었다. 자신이 인간의 몸에 만들어 놓은 자식이 태아날 것을 생각하니 마냥 마음이 부풀었다. 제우스는 그 생각을 하니 입이 근질근질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신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녔다.
“이제 얼마 후면 인간의 몸에서 내 자식이 태어날 걸세. 그는 지상에서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영웅일 걸세. 그러니 내 얼마나 기諛?되겠는가!”
이러한 제우스의 자랑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게도 전해졌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사태를 짐작하고,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아들을 그녀의 고국에서 왕으로 삼을 작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헤라는 출산의 여신인 에일레이티아를 불러들여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출산을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자 에일레이티아는 주술로써 출산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에일레티아의 주술로 인해 알크메네는 격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제우스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만일 그녀를 직접 나서서 도와주면 결국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것을 헤라에게 고백하는 꼴이라 나설 수도 없었다. 헤라는 제우스를 볼 때마다 묘한 조소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에일레이티아의 주술로 인해 이제 알크메네는 출산을 앞두고 숨이 거의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제우스의 목적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절체절명의 순간 알크메네의 시녀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났어요!”라고 외쳤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에일레이티아가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주술이 풀려 바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쌍둥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그 시녀의 이름은 갈란티아스였다. 결국 알크메네의 출산을 막으려 했던 헤라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으며, 이에 화가 난 헤라는 그 시녀를 그 자리에서 족제비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알크메네는 두 쌍둥이를 낳았고, 이름을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라고 지었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었고, 이피클레스만이 암피트리온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알크메네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편 암피트리온은 아들들이 태어났지만 기쁘기는커녕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가끔 알크메네에게 심통을 부리기도 하고 그녀를 못살게 굴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암피트리온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는 쌍둥이였지만 판이하게 달랐다. 헤라클레스는 아주 강하고 용기가 있었지만 이피클레스는 그렇지를 못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암피트리온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암피트리온은 계속 테베에 살았는데 이곳에서 딸 페리메데가 태어났다. 그 후 암피트리온은 오르코메노스 왕인 에르기노스와 미니아스인을 상대로 싸우다가 결국 죽음을 맞았다. 암피트리온이 죽은 후 알크메네는 크레타 섬의 라다만티스와 결혼하여 보이오티아에서 살았다. 어쨌든 제우스와 관계하여 출산한 헤라클레스는 많은 이야기를 발생시킨 강한 영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한번 남녀 간에 신뢰가 깨지면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이 깊었던 사이일수록 신뢰가 깨지고 나면 보통의 사이보다 더 심각하다. 신뢰라는 것은 쌓기는 오래 걸리지만 깨지는 데는 불과 몇 분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상호간에 오해할 일이 없도록, 금이 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져가야 하는 것이 남녀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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