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0대에 접어든 그는 20대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사랑 얘기를 담은 솔로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몇 년 더 늦게 낸다고 해서 크게 상할 물건이 아니고 시기에 따라 특별히 잘 팔릴 것도 아니’라 여유 있게 준비한 첫 솔로앨범 ‘반성의 시간’은 5년 만인 최근에야 나오게 됐다. 뜻 모를 은유와 기괴한 묘사가 넘쳐나던 음악을 만들던 그가 이번엔 세상에서 제일 흔한 이별과 사랑 이야기를 세상에 둘도 없는 ‘백현진표’로 뽑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20대 시절의 얘기를 담았어요. 내 20대를 정리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반성’이라는 낱말이 떠올랐습니다. ‘30대를 위한 홍대 앞 미사리표 성인가요’라고 농담처럼 얘기하죠.”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돼지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 벌이 낙하를 할 때 네가 고백한 말들’이라며 불편할 정도로 자세한 묘사는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라는 능청으로 마무리된다(‘학수고대했던 날’). ‘추억’이라고 미화할 수 없는, 밤새 술 마시고 뱉어놓은 토사물처럼 잊어버리고 싶은 20대의 기억들. “예전에는 가사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에 전혀 매력을 못 느꼈다”는 그는 이번 앨범에서는 음악과 가사의 비중을 거의 동등하게 다뤘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 어어부 프로젝트의 방송 금지곡 상당수는 해제되었고 음악 환경도 변했다. 그 역시 어어부 프로젝트의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앨범 시장 열악한 상황에서 굳이 앨범을 내는 것은 ‘새 곡이 나왔습니다, 공연 때 오세요’라는 초청카드나 주변인에 대한 선물 정도의 의미입니다. 온라인으로 음원을 공개하는 것은 분명한 흐름인데 얼마나 유쾌하게 풀지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어요.”
백현진은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 작가로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이어 지난달 국내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가 하면 틈틈이 글을 발표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전방위 예술가이다.
그는 “플럭서스(1960∼70년대에 걸쳐 일어난 전위예술운동) 선언문에 ‘A로 할 걸 굳이 B로 하지 말고…’라는 의미의 문장이 나온다”며 “내가 여러 매체를 사용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작업에 참여하며 ‘굳이 이걸 왜 이 매체를 사용해서 이 얘기를 지루하게 하지? 싶을 때가 많아서 제 작업에 그런 오류는 범하지 말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화 음악으로, 배우로서 간간이 영화와도 인연을 맺어왔던 그는 요즘 영화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는 ‘단편영화’, 미술계에서는 ‘비디오아트’라 부른다는 이 영상물에는 황정민 박해일 류승범 강혜정 문소리 등이 6개 에피소드에 참여한다.
글·사진=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