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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on] 송옥숙 "똥덩어리? 기분 나빴지만 덕분에 인기"

입력 : 2008-10-23 09:53:14 수정 : 2008-10-23 09: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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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 #'독해지는 희연 표정. 전주 끝나고 차례 되자, 활 드는 희연, 힘 있게 켜기 시작한다. 객석의 진만, 멈칫해서 보고 이든도 멈칫, 혁권도 놀라는! 강마에도 흠짓 해서 희연을 흘끔 쳐다본다. 음악과 함께 희연, 점점 더 힘 있게 느낌 있게 온몸으로 악상 표현해내고…’

깊어가는 가을 밤, ‘리베르 탱고’ 첼로 연주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탤런트 송옥숙(48). 중학생 시절, 우연히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사계’ 연주를 듣고 클래식에 빠져들었다는 그녀는 드라마 속 이름이 더 익숙할 만큼 완벽한 첼리스트로 변신해 있었다. ‘정희연’으로 살아가는 요즘, 하루 하루가 바쁜 그녀를 드라마 촬영장에서 만났다.

이날은 카메오로 출연하게 된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촬영이 있던 날. 남양주의 한 창고 안에서 연주되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이 인터뷰를 위해 자리 잡은 인근까지 흘러나왔다.

“드라마 출연하면서 이렇게 연기 이외의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건 처음이에요. 악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클래식을 좋아해서 현악 연주자를 연기해보고 싶었다는 생각은 있었죠. 그런데 한 2주 연습하고 감독에게 못할 것 같다고 출연을 번복했어요. 첼로 배워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닌 거야.(웃음)”

첼로를 연습하느라 손에는 진물이 흐르고 굳은살까지 배겼다. 감독은 ‘테크닉하게 찍을 테니까 그냥 취미로 배운다고 편하게 생각하라’며 보잉이나 운지법 등 아주 기본적인 것만 연습하라고 격려했지만 그마저도 힘든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전투적인 트레이닝이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 조감독에게 ‘나 이정도 밖에 안 되는데 대체 어떻게 찍을거야? 난 감독만 믿는다고 전해줘’ 말하면 ‘감독님은 선생님만 믿는다는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은 지난 2005년 SBS '패션70s'에서 함께 호흡한 적이 있다.

“2년을 배워도 안 될 텐데 2개월 연습해서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죠. 그래도 피땀 흘린만큼 보람을 느껴요. 매우 특별한 경험이죠. 드라마가 끝나도 계속 악기를 배울 생각이에요.”

# 강마에 : 아줌마 같은 사람들을 세상에서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구제불능, 민폐, 걸림돌,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난 그중에서도 이렇게 불러주고 싶어요. (힘주어)똥!덩.어.리.’ 

“아휴~ 아무리 연기였지만 ‘똥덩어리’ 소리에 기분 나빴지.(웃음) 처음에 대본 보는데 깜짝 놀랐어요. ‘아, 이거 정말 뭐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니까요. 거기에 또 (김)명민이의 한쪽이 올라간 입술, 비웃는 듯한 표정과 대사까지 들어봐. 아무리 연기지만 기분 정말 안 좋더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10대에서 60대까지의 다양한 사람들과 최고의 마에스트로로 인정받지만 안하무인의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다.

처음에는 대충 연주자를 흉내내는 것이 아닌 ‘진짜 제대로 된 연주를 해보자’는 욕심이었다. 지판도 제대로 짚고 소리도 제대로 내고 비브라토까지 완벽하게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왼손 따로 오른손 따로는 잘 되는데 이상하게 같이만 하면 안되는 거야. 보잉하고 비브라토를 같이 하면 막 머리가 흔들리고. 그래도 소리를 제대로 못내더라도 이미지 상으로 잘 그려내고 싶었죠. 이미지를 잘 살려내는 것이 무엇일까 연구해보니까 비브라토더라구요. 그래서 비브라토를 집중적으로 연습했죠. 하이 포지션은 비디오를 보면서 익혔고.”

드라마 첫 촬영하기 전 감독은 그녀에게 '리베라 탱고’를 솔로로 연주할 것이라고 귀뜸해줬다. 극중 정희연의 솔로 장면은 드라마 전개상 연주회를 여는 그들의 희노애락이 담긴 하이라이트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남편의 구박에 몰래 빠져나와 아슬아슬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똥덩어리’라는 지휘자의 비난에도 꿋꿋이 무대에 오르는 꿈을 지닌 여자. 그런 '정희연’이라는 인물이 어려움을 딛고 연주자로서의 전환점을 맞는 역사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똥덩어리가 아닌 아줌마도 아닌 진짜 정희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때문에 연기자는 물론 제작진도 심혈을 기울였다.

“들리는 말로는 그 연주 장면만 8시간 동안 편집했대요. 방송 당일 드라마 보고 바로 감독에게 문자 보냈어요. ‘으아! 내가 봐도 너무 멋있어!’라고. 감독 덕을 많이 봤죠. 내가 봐도 참 감동스러웠고, 나중에 클래식 연주자들마저 깜빡 속았다고 하더라구요.” 

 # 희연 : 나 정희연이야. 아줌마가 아니라 정희연이라구요. 정희연 씨, 이렇게 불러주세요

솔로 연주 장면 이후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는 ‘정희연 아줌마, 정말 첼로 연주자인가요?’하는 질문이 속속 올라왔다. 고된 연습도 큰 몫을 했겠지만 평소 클래식을 좋아하고 음악을 즐겨 듣던 그녀이기에 그나마 수월했을 것이다.

“연기 생활 28년째인데 한 장면으로 이렇게 임팩트가 강한 경우는 처음이에요. 순간적인 반응이 굉장히 즉각적이라 놀랬어요. 그야말로 ‘정희연’의 인기이지요. 드라마에서는 주부에게 포커스가 맞춰졌지만, 이 세상에 모든 ‘똥덩어리’ 취급을 받는 숨겨진 보석들이 나로 인해 위안을 받았다면 너무 즐거운 일이죠.”

특히 주부들은 열광했다. 자신의 꿈은 접은 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이름 대신 ‘아줌마’로 살아가던 한 여성이 당당히 주위의 구박과 핍박에 맞서며 꿈을 이루는 모습은 적잖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나도 못 이룬 꿈이 있어요. 연기자로서 무한한 꿈이요. 아직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나에게도 가족이 있으니까…. 엄마와 아내의 역할이 필요하죠. 워낙 욕심이나 열정이 타고 났나봐. 지금도 하고 싶은 것 너무 많은데 이제는 나만의 인생이 아니잖아요."

 '송옥숙'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1980년 MBC 1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온 송옥숙은 지난 2005년부터 동아방송대학 영화예술계열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올해는 전국연극제 홍보대사까지 맡아 눈코 뜰새없다.

얼마 전에는 가슴으로 낳은 딸을 세상에 공개했다. 작년 남편의 권유로 입양한 지원이는 친딸 보다 2살 위인 언니다. 몇 년전 둘째 아이를 유산한 후 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가까운 친척의 아이인 지원이를 입양하게 됐다.

“입양을 공개하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겠지만, 아이에게 괜찮다 싶은 시기인 것 같아서 공개했어요. 오히려 자기를 외부적으로 왜 공개 안하나,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또 전문가들은 입양을 '쉬쉬'하는 것보다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하더라구요.”

가족 챙기랴, 강의하랴, 촬영하랴 바쁜 스케쥴 탓에 늘 피곤해서 한 번도 드라마에서 상큼하게 나온 적이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드라마에서 술 먹고 강마에 집에 찾아가서 술주정한 장면이 있어요. 근데 사람들이 진짜 술 먹고 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때 눈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어요. 얼굴이나 눈이 붓기도 했었고. 내가 봐도 정말 술 취한 것 같더라니까요.”

최근에는 연극 무대에 서볼까 했지만 남편의 만류로 포기했다. 또 한편으로는 내년쯤 대학원을 가볼까 싶다가도 가족들 생각에 고민 중이다.

“물론 가족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은 많지만, 그만큼 나를 만들어주는 존재가 가족이죠. 특히 남편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충고를 해줘요. 직설적이고 다소 이기적인 제 성격에 대해 진심으로 조언해요. 남편을 통해 그리고 아이들을 통해 지금도 인생의 지혜와 소중함을 배워가고 있죠."

주부로서 포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가족들로 인해 얻는 것 또한 많다는 얘기다.

저만치에서 감독의 '스텐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보다 조금 더 크고 명확한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연주가 시작됐다.

"이번에 힘든 연기 해보니까 뭘 못하겠나 싶어요. ‘나 다음에는 발레리나 해볼까봐’ 농담으로 그랬다니까요. 그런데 서혜경 씨 촬영 언제 끝나나요? 빨리 봐야하는데. 저 유명한 연주자 언제 또 볼 수 있겠어."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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