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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생명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물이다. 그래서 물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한다. 물은 조금씩 모여 내가 되고 강을 이루어 바다로 흘러간다. 고여 있기도 하고 흙과 섞여 늪을 형성하기도 한다. 늪은 물과 흙이 공존하는 중간지대다. 늪은 늘 불안, 불완전을 의미한다. 하지만 몸의 콩팥이나 허파처럼 자정작용을 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식물과 물고기, 철새들이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생태계가 늪이다.

수심이 3m 이하로 얕아 햇볕이 바닥까지 충분히 내리쬐어 물수세미와 검정말 등 침수식물이 바닥에 무성하고, 바람에도 물이 살랑살랑 섞인다. 물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증거다.

/…늪가에 지천으로 핀 자라풀과 개구리밥/ 늪 가에 지천으로 핀 붕어마름 가시연꽃/ 잔물결이 일렁이는 우포늪 가는 길/ 왜가리 백로 논병아리 어울려 노는 길…/(고승하의 ‘우포늪 가는 길’)

얼마 전 내가 방문한 경남 창녕군 우포 늪은 마치 녹색 카펫이 깔린 듯했다. 개구리밥과 세계적 희귀종인 가시연 등이 수면을 파랗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 위에 노랑부리저어새, 큰기러기, 왜가리, 백로, 청머리오리 같은 희귀 새들이 날아다녔다. 수십만㎡의 늪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듯했다. 시베리아 등지에서 철새들이 여느 해와 달리 일찍 찾아온 것이다. 중국에서 기증한 희귀 조류 따오기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지구 해빙기 때인 1억4000년 전에 형성됐다는 우포 늪이 그나마 온전히 보전된 것은 사람 손길을 덜 탄 때문인 듯싶다. 식물은 우리나라 전체의 10%인 435종, 동물은 조류·곤충류를 합쳐 1000종에 달한다. 전형적인 농촌인 창녕은 비교적 오지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편이다.

경남 창원과 우포늪에서는 오늘부터 여드레 동안 생명의 공간인 늪을 보전하기 위한 제10차 람사르총회가 열린다. 1971년 이란의 소도시 람사르에서 시작된 이후 아시아 지역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모처럼의 국제적인 환경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환경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여행 떠나기에 좋은 이 계절 ‘생태계 보고’인 우포늪을 찾아가자. 만추의 자연이 그 아름다움을 선보이며 낯선이를 반길 것이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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