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새폴스키 지음/이재담·이지윤 옮김;사이언스북스/3만원 |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언제나 피곤한가?” “연일 떨어지는 주가로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는가?” “직장 상사 때문에 당장에라도 사표를 내고 싶은 충동이 인 적이 있는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사소하게는 집 앞 골목길에서의 주차 시비에서부터 직장 내 인간관계, 아이 교육, 내집 장만, 대출이자 부담 등에 이르기까지 스트레스의 가짓수를 나열하다 보면 끝이 없다. 스트레스 목록을 나열하는 이 자체 역시 또 하나의 스트레스로 여길 정도로 현대인은 예민해져 있다. “아, 열받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30여년간 스트레스를 연구한 저명한 신경 내분비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가 쓴 ‘스트레스’는 이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에게 맞는 ‘스트레스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이 부제인 이 책에서 저자는 누구나 스트레스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인체 내에서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스트레스란 결코 극복하지 못할 불치병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스트레스 반응을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바나로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한다. 햇볕이 따사로이 내리쬐는 가을 오후, 당신은 한가로이 초원을 거닐고 있다. 마침 근처에 있는 숲 속에 과실수들이 있다는 생각에 막 숲 언저리에 발을 디딘 순간, 아뿔싸!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던 사자와 부딪치고 말았다. 예상치 못했던 위급한 상황에 맞닥뜨리자, 당신 신체의 모든 장기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즉시 변속기를 바꾸어 넣는다. 소화관은 활동을 중단하고, 호흡수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성호르몬 분비는 억제되며, 뜀박질을 하기 위해 심장 박동량은 빠르게 증가해 다리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를 마구 공급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애초에 스트레스 반응은 적을 맞닥뜨리는 등의 긴급 상황에서 신체 내 기관을 동원하여 재빨리 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야생의 아프리카를 떠나오면서 사자를 맞닥뜨리거나 바위 밑에 숨어 있는 뱀에게 물리는 등 직접 몸에 와닿는 육체적 스트레스의 대부분을 털어버렸다. 대신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다양해지고 고도화된 정신적 스트레스를 짊어지게 됐다. 긴급한 상황에서 적으로부터 우리 목숨을 지켜 주는 역할을 하는 스트레스 반응이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가 변질함에 따라, 거기에 더해 장기화, 만성화되면서 오히려 우리 몸과 마음을 병들게 만드는 적으로 돌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외신을 통해 보도된 리더십이 나쁜 직장 상사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의 경우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25%나 높아진다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심장병을 비롯해 위궤양, 우울증 등 각종 현대인의 고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폴스키 박사는 30여년간 아프리카 케냐에서 인간과 유사한 고도의 사회성을 지녀 지배 서열 등 개체 간 관계에 의해 각종 스트레스를 겪는 야생 개코원숭이 사회를 통해 집단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연구했고,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쥐 실험을 통해 세계 최초로 스트레스가 뇌의 해마에 있는 신경 세포를 파괴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등 스트레스와 뇌질환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그는 단순히 스트레스 관리법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기존의 자기 치유서나 실용서가 아닌 스트레스를 완벽히 이해함으로써 개인에 맞는 스트레스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스트레스 대처법은 뭘까? 그는 스트레스 관리의 원칙으로 80대 20 규칙을 제안한다. 소매업에서는 “소비자의 20%가 80%의 불평을 제기한다”로, 범죄학에서는 “범죄자의 20%가 범죄의 80%를 저지른다”는 등 사회 곳곳에서 여러 변형된 버전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 80대 20 규칙을 스트레스 관리에 적용해 “노력의 첫 20%가 스트레스의 80%를 경감시킨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를 받아 온몸이 아픈 누군가를 위해 친구나 가족이 아무리 나서서 절실하게 치료를 돕는다 하더라도 당사자가 진심으로 원하고 마음먹지 않는 한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스스로 진심으로 바뀌길 원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려는 단순한 행동만으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된다는 것이다.
새폴스키 박사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배 서열 간 치열한 경쟁으로 각종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개코원숭이들도 가족과 동료 등 사회적 유대 관계를 통해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해소하곤 한다. 스트레스의 늪에서 벗어나고자 첫발을 내디딘 당신은 이미 반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많은, 거의 전부에 가까운 80%를 내디딘 것이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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