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의 한보그룹 관련 비리가 드러났을 때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현철이는 내가 잘 안다. 돈도 모르고 인사에 개입할 줄도 모른다. 그럴 애가 아니다”라고 거듭 강변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 수석으로 김 대통령을 지켜봤던 B씨는 “김 대통령이 그간의 각종 비리 보고에도 불구, 현철씨 말만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권 초 민주계 최대 실세였던 김덕룡 의원이 현철씨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가 김 대통령에게 찍혀 한때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역대 대통령이 매번 친인척 비리를 피하지 못한 데는 무엇보다 ‘자생적 원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스스로가 형제와 자식의 일에 먼저 눈 감고 귀 닫아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사정기관의 완벽한 감시가 어려운 측면도 있으나, 대통령의 ‘온정주의’가 사실상 감시 업무에 제약을 가함으로써 문제가 더 커졌던 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으면 “친인척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청탁을 받은 형 건평씨에 대해 2004년 3월 기자회견에서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싸고돌았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간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편을 줄곧 든 데 대해 일각의 우려가 없지 않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지 않으면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이 의원을 ‘영일대군’으로 부르는 시중 민심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 가족과 친척 관련 내용은 상황에 따라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거나 묶어서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이날 평화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은 자신이나 직계 가족을 철두철미하게 감시하고, 혐의가 있으면 아주 무자비하게 내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허범구 기자 hbk10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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