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도 "편찮으실때 못뵀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을 보낸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생전 추기경과 가까이서 또는 먼발치에서 인연을 맺었던 문인들도 애도의 말을 전했다.
김 추기경의 회고록에 추천사를 쓰기도 했던 소설가 박완서(78)씨는 17일 “세상이 한층 더 적막해진 느낌”이라며 깊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박씨는 “최근에는 많이 편찮으셔서 만나뵙지도 못했다”며 “우리가 숨던 날개를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2004년 출간된 고인의 회고록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에 쓴 추천사에서 “평생을 높은 자리, 무거운 직책을 썼으면서도 예술을 즐기며 천진하고 가볍게 손뼉을 칠 수 있는 추기경님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며 “그분과 동시대를 사는 복을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회고했다.
김 추기경이 결혼식 주례를 설 정도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김지하 시인은 “선종 소식을 듣고 눈물이 났다”며 “편찮으실 때 간다간다 하면서도 수녀님들이 ‘때가 안 좋다’고 하셔서 끝내 못 뵌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적’으로 필화사건을 겪고 2년 만인 1972년 가톨릭계 잡지 ‘창조’에 ‘비어’를 실어 다시 체포돼 마산의 국립결핵요양원에 연금당했다. 이때 추기경이 찾아와 마산교구청에서 함께 밤을 보내며 첫 인연을 맺었다. 김씨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추기경님은 보들레르의 시를 줄줄 외울 정도의 시인이시고 아주 큰 예술가셨다”고 전했다.
또 가톨릭의 정치 참여에 신중한 입장이었던 김 추기경은 김씨와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추기경님이 ‘나는 촌사람이고, 자네는 도시사람인 것 같은데 앞장서서 일을 벌여 나가는 것은 도시사람이지만 마무리는 우직한 촌사람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2004년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에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이라는 시를 발표했던 정호승 시인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정씨는 “성경에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라는 말이 있다”며 “그동안 추기경께서 눈을 뜨시고 맹인인 우리를 인도해 주셨는데 이제 다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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