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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깃꼬깃 모은 1000만원마저 "사제교육비로 써라"… 무소유와 사랑 '소중한 선물'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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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2-18 19:13:00 수정 : 2014-04-17 18: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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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추기경 유품공개… 청빈한 삶 묻어나
시민들 장기기증 행렬… ‘희망 바이러스’ 확산
◇ 18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박물관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미사 집전 때 입던 홍색의 고유 복장인 필레올루스를 비롯해 머리에 쓰는 황금색 주교관, 주교십자가, 주교반지, 묵주 등 유품이 공개되고 있다. 장례위원회 홍보담당 허영엽 신부는 “추기경은 은퇴생활 보조금으로 월 250만원씩 받았으나 평소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을 도와주는 데 거의 다 쓰셨다”고 말했다. 1000만원 남짓 되는 추기경의 재산은 교구 사무처에 맡긴 유언장에 따라 교구에 귀속된다.                                                                                                                                사진공동취재단
“남은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존재, 저의 모든 것을 여러분을 위해 바치고 싶습니다.”

1998년 6월22일 오전 11시 서울 명동성당. 김수환 추기경은 신자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울대교구장 은퇴 미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참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며 “사도 바오로같이 저도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피를 흘리고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습니다”라고도 했다.

그때 말대로 김 추기경은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을 주고 갔다. 꼬깃꼬깃 모은 1000만원도 신학대와 후배 사제들을 위해 써 달라고 유언했다. 그리고 크나큰 사랑을 보여줬다. 각막을 내줘 두 명에게 빛을 줬다.

김 추기경의 모습을 보고 많은 시민이 장기기증에 동참하고 있다. ‘바보’가 퍼뜨린 ‘희망 바이러스’다. 그가 세상에 남긴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소유와 사랑의 가르침이다.

18일 천주교서울대교구김수환추기경장례위원회는 추기경 유품 일부를 공개했다. 유품은 추기경이 은퇴 뒤 거처로 쓴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 성심교정(신학대학) 주교관과 도서관,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추기경은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날 당시 책, 선물 등을 학교에 모두 기증했다. 학교 도서관 2층 ‘김수환 추기경 문고’에는 신학교리, 백과사전 등 3000여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추기경은 평소 책을 무척 아꼈고 “수입의 1%는 책에 투자하라. 옷은 해어지면 버리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도 위대한 진가를 품는다”고 말했다.

추기경이 주교 서품된 뒤 사용한 전례복, 주교 시절 입고 사용했던 제의와 제구 등도 공개됐다. 자색 ‘수단(Soutane·성직자가 입는 예복)’은 1966년 추기경이 주교가 됐을 때부터 입은 것으로 색이 바랬다. 성작(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과 성반(성작 받침)의 광택도 거의 사라졌다. 안경 5점도 버리지 않고 모아 놓았다.

이 학교 교학부처장 변종찬 신부는 “추기경은 많은 선물과 화려한 제구를 받게 되지만 김 추기경은 예전부터 사용한 오래되고 소박한 제구만 고집하셨다”고 설명했다.

추기경은 은퇴한 뒤 교구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로 월 250여만원을 받았다. 그 돈을 모아 통장에 남긴 1000여만원도 모두 “교구에 환원해 사제 교육비로 쓰라”고 당부했다.

추기경을 본받으려는 시민들의 호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평소 하루평균 25∼30명 내외인 장기기증 신청자가 전날에만 151명에 달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신청자 중에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하신 걸 보고 결심했다는 분이 많았다”며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까지 큰 가르침을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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