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를 1년가량 앞두고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운동이 가열되고 있다. 최근 지방분권국민운동본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은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을 갖고 10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정당공천제는 정당이라는 틀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민의의 수렴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장점보다는 지역 내 갈등을 부르고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폐단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을 통해 바람직한 대안은 무엇인지 의견을 들어본다.
공천헌금·중앙당에 예속 등 부작용 심각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
정당의 공천을 지방선거에서도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당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정당국가의 원리, 지방자치도 정치라는 점,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공천을 배제해도 정당의 사실상의 개입을 막을 수 없다는 점,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경우에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간섭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점,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공천 배제가 정당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어긋난다는 점 등을 논거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그 폐해도 만만치 않다. 정당이 공천권을 이용해 공천헌금을 강요하고 있으며, 지방정치인이 공천 때문에 중앙정치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으며, 공천을 미끼로 중앙정치인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방행정 난맥상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하고 있다. 정당공천의 폐해는 선거과정에서만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정당공천을 받은 단체장이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단체장이 국가나 시도의 여당과 정당을 달리하는 경우에는 긴급한 지역문제를 함께 풀어 가는 데 장애가 되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부당한 특혜가 주어진다는 의심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정당공천의 부작용은 더 이상 방치될 수 없는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지방행정은 정당이 개입해야만 할 정도로 이념적이지 못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결론적으로 정당공천에 의해 무책임한 인사가 선출되는 것보다는 인물 중심의 지방선거가 지방을 더욱 윤택하게 할 것이다.
정당정치 대신 기초의원들 줄서기 현상만
오관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 |
2006년 지방선거에서 시민단체의 의정평가에서 4년 연속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던 기초지방의원이 낙선했다. 반면 기호 2번에 강씨나 김씨 성을 가진 후보는 대부분 당선됐다. 영남이나 호남 등 특정지역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 지역의 지방의원들은 시민단체 등 지역 유권자의 의정활동 평가에 신경 쓰지 않는다.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중앙당의 눈치는 보더라도 지역 주민의 눈치는 보지 않는다. 이렇게 지방의원선거의 정당공천제도는 지방의원을 정당에 줄 세우고 지역정치를 중앙정치에 종속시킨다.
지방의원 정당공천제를 주장하는 강력한 근거로 정당의 책임정치를 말한다. 그러나 각 정당의 지역정책에 차별성이 있는가. 나는 2006년 지방선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지방자치단체 후보자의 공약을 분석했었다. 분석 결과 각 정당후보자의 공약은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공통점이 많았는데 공약의 70∼80%가 준비되지 않은 개발공약이었다. 한 기초의원 후보자의 경우 “지역주민이 원하는 만큼 높게 지어주겠다”는 것이 대표 공약이었다. 재개발지역에서 출마한 후보였다.
정당공천제는 주민을 자치의 주체가 아니라 관객으로 전락시킨다. 이러한 사실은 투표율로 확인된다. 2006년 지방선거 투표율은 51.3%인 반면 그전에 치러진 16대 대선의 투표율은 71.4%, 17대 총선은 60.6%였다. 현재와 같이 지역정치를 정당이 독점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2010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40%대로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 지역의 정치를 정당이 독점하고 주민을 관객으로 만드는 정당공천제는 폐지돼야 한다.
폐지땐 토호세력이 지방의회 장악할 것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한국정치에서 정당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 그리고 정당공천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리 문제로 많은 전문가는 기초자치 단체장과 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민재권 이념과 대의정부 제도를 축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과 대표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정당의 기능을 간과하는 주장이며 유권자의 알 권리를 빼앗자는 주장이다.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공천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리 문제는 정당의 투명성과 민주화 제고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정당공천을 금지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정당공천 금지를 주장하는 논리로 미국과 일본의 예를 들고 있는데 일본은 정당공천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 19세기 엽관제 폐해를 경험했던 미국은 정당의 참여를 금지하는 곳이 전체의 80% 이상이지만 후보자가 정당표시를 하지 않을 뿐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활동은 공개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곳이 많다. 한편 지방자치의 깊은 뿌리가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은 정당공천을 하고 있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중앙정부의 집행기능 수행, 가치중립적인 행정으로서의 지방행정이 아니라 가치 배분의 정치적 결정이며 이에 대한 주민의 정치적 선택이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에서 정당은 대표와 주민을 연결하는 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정당공천이 금지된다면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예속될 수밖에 없고 토호세력에 의해 지방정부는 장악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에 후보판단 근거 제공 위해 필요
이상묵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 |
현재 문제점이 제기되는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만 하는가. 또는 정당공천제 폐지만이 유일한 대안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반대로 정당공천제의 폐지가 우리나라 지방의회 및 지방정치의 발전을 담보한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와 같이 기초의회에 중앙당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더라도 지역의 다른 이해관계로부터 의원들이 자유롭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 정당공천제가 실시되기 이전에 기초의회 의원들의 충원과정을 보면 지역 토호세력들이 난립했고 자신들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후보자 선택의 기준이 모호해 인물 위주의 투표행위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지연·학연·혈연 등이 주요한 투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 주민의 대표자를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며 선거가 경쟁적인 후보자 간의 대결이라면 그들의 책임성을 높이고 유권자에게 후보자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당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초의원들의 의정활동이 어차피 정당과 맞물려 이루어지게 되는데 정당공천을 배제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 된다. 현재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가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수정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지 일방적으로 폐지하자는 것은 또 다른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정당공천제의 가장 큰 문제는 주로 후보자의 공천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공천과정에서의 부정과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천과정에서 공정성이 확보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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