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여러 표정으로 일본 도쿄 번화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섬나라 일본은 다양한 인종과 여러 문화로 이뤄졌다. 실제 역사는 물론 신화도 복잡한 곳이 일본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정답은 섬나라가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섬나라는 모두 47개국으로, 전 세계 국가(191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국토의 절반 이상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덴마크, 이탈리아, 베트남, 소말리아 등 13개국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세계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G8(주요 8개국) 가운데에서도 섬나라는 영국과 일본으로 회원국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반도 국가는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로마 시절의 영광을 배려해 준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현재로선 섬나라가 수는 물론이거니와 정치력과 경제력에서도 반도 국가를 앞지르고 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이라는 질문은 언제나 역사학자와 역사학도들을 궁금하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만일’ 일본이 우리나라와 연결돼 있었다면? 아니면 ‘한반도 아래 일본이란 섬나라가 아예 없었더라면?’ 혹시 한국이 오늘날의 일본이 되지는 않았을까?
‘일본이 없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말 그대로 가정에 불과하지만, ‘일본이 우리나라와 연결돼 있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절대 가정이 아니다. 실제로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의 간빙기(間氷期)에 해당하는 지금은 해수면의 높이가 많이 올라가 있어 한반도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1만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제주도와 대마도를 통해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해서, 붙어 있는 땅덩어리를 통해 우리의 조상들이 일본으로도 건너갔을 것으로 인류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한반도와 일본은 쓰시마를 통해 연결돼 있었다. 이후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일본은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
사실 일본은 여러 면에서 G8의 또 다른 섬나라인 영국과 공통점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이 적극적이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활달하며 독일인들이 무뚝뚝하다면, 영국인과 일본인들은 친절하면서도 낯을 무척 가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G8 가운데 둘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 하며, 자동차의 좌측 통행을 고집하는 것도 특이하고, 홍차와 녹차 없인 못 사는 취향마저 닮은 꼴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각각 유럽의 북서쪽 끝 변방과 아시아의 동쪽 끝에 대척점(對蹠點)마냥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듯 독특한 영국과 일본을 대륙으로부터 떼놓은 장본인이 해협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마라톤 풀 코스에도 이르지 못하는 35㎞의 짧은 거리가 오늘날, EU 회원국이면서도 유로화가 아닌 파운드화를 고집하는 영국을 만들어 냈다. 그러고 보면 유럽의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모로코를 가로지르는 지브롤터 해협은 14㎞밖에 안 되며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보스포러스 (터키) 해협은 550m에 불과하다.
◇유럽의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에 해당하는 것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다.(오른쪽) 동아시아의 지도를 180도 거꾸로 돌려보면, 한반도를 바라보는 일본의 위치가 영국과 비슷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왼쪽) 유럽의 지도를 180도 돌려보아도, 영국은 동아시아의 일본에 해당하는 위치에 배치된다. 참고로 영국의 좀 떨어진 왼쪽에 한국과 비슷한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는 국가는 덴마크이다. |
그런 일본은 섬나라 가운데에서도 특히나 섬이 많은 나라다. 일본 통계청이 제공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그 수는 자그마니 6852개. 다도해 덕분에 섬이 3200여개에 달한다는 한반도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양이다. 섬의 개수만 놓고 볼 때 섬나라의 수장(首長)격에 해당하는 필리핀의 섬이 7107개라는 것을 감안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게 일본이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알아서인지, 성종의 명령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숙주도 그의 저서 ‘해동제국기’를 통해 “별처럼 흩어진 섬에 살면서 풍속도 아주 다르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서는 물론 남북으로도 국경선이 길게 뻗어 있어, 북위 45도에서부터 북위 20도에 이르기까지 장장 2750㎞의 길이에 수많은 섬들을 뿌리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남미의 칠레는 위도가 38도에 걸쳐 있다.) 그래서일까? 극동아시아의 안드로메다 성운에는 주변 은하계에서 흘러들어온 온갖 문화가 잡탕처럼 섞여 있다. 예를 들어, 남아시아의 말레이군도는 물론 남태평양의 뉴기니나 폴리네시아 등에서 보이는 사회제도 및 생활습관 등이 일본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일본이 여러 문화와 다양한 인종으로 뒤섞여 있음을 반증하는 또 하나가 바로 복잡한 신화를 들 수 있다. 실제로 민족의 기원과 역사를 짐작하게 해주는 타임캡슐이 신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단순하기까지 한 한반도의 단군신화는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으로 형성돼 왔음을 알려주는 사료(史料)이다. 반면 일본은 일본인들조차 외우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신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신화를 지니고 있다. 일례로 일본 고대사의 주인공인 진무천왕이 등장하기까지 가교역할을 해주는 주요 신들은 이자나기, 이자나미, 아마테라스 등 8∼9명에 이르고 있다.
그런 일본이기에 출발점에서부터 행로와 목적지가 한반도와는 판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동네를 떠나 강 건너 산 기슭에 몇몇이 모여 살아온 형국이니 생활양식이며 가치관이 어찌 이쪽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쯤에서 문뜩 드는 허황된 생각 하나. 다시 빙하기가 와서 한, 중, 일의 바다가 사라지고 육지의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기 시작한다면? 섬 하나 갖고도 온갖 신경전을 다 부리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컨대, 지구 최대의 영토 전쟁이 발발하지는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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