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이 줄지 않고 있다. 한해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정 불화나 학업 스트레스, 왕따 등을 이유로 목숨을 버린다. 정부는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죽음의 문턱에 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엔 역부족이다. 인터넷에는 여전히 ‘자살 정보’가 둥둥 떠다닌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실태를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충동적일지는 몰라도 너무 힘들어서 살기 싫을 때가 많아요. 무조건 공부여야 한다는 세상이 싫어요. 뭔가 다른 걸 하려고 하면 부모님이 반대를 해요. ‘너같이 공부해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은 새벽 2시까지 하는데 넌 뭐냐’며 다그치세요.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나. 왜 공부를 잘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너무 많이 들어요. 부모님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들어줬으면 해요.

◆한해 수백 명씩 스러져=지난 10월15일 경기도 이천에서 여고생 두명이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두 여고생은 손과 발이 끈으로 서로 묶인 채였다. 같은달 12일에도 이천에서 한 중학생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중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앞서 9월28일에는 부산에서 여중생 두명이 동반투신했다.
청소년 자살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0∼19세 자살자 수는 317명에 달했다. 2004년 248명을 시작으로 ▲2005년 279명 ▲2006년 232명 ▲2007년 309명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살 사망률도 10만명당 4.6명으로 ▲2004년 3.7명 ▲2005년 4.2명 ▲2006년 3.5명 ▲2007년 4.6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행한 ‘2008년 아동·청소년 백서’에 나타난 2007년 청소년 자살 사고(思考)율(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는 비율)은 23.7%(남자 19.0%, 여자 28.9%)였다. 청소년 5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사고율이 높은 학년은 남학생은 고1, 여학생은 중2로 각각 19.6%, 30.4%를 기록했다. 자살 시도율은 5.8%로 나타났는데 여학생(7.6%)이 남학생(4.2%)보다 높았고 고1 남학생(4.5%)과 중2 여학생(9.1%)이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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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역 중학생들이 지난 7월20일부터 2박3일간 강원도 횡성에서 열린 ‘제4회 청소년 생명사랑 나눔의 숲 체험 캠프’ 에 참가,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마음을 위로해주는 체험을 하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제공 |
상담 기관에는 청소년들의 고민 상담이 쇄도하고 있다. 위기 청소년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지역사회청소년통합지원체계(CYS-Net·Community Youth Safety-Net)’에서는 2007년 한해만 총 41만2811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2005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한국자살예방협회 사이버 상담실(www.counselling.or.kr)에는 현재 공개상담 약 5800건, 비공개 상담 약 4600건이 올라와 있다. 중·고교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곳에서만 연평균 2000여건, 하루 6건꼴로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들이 상담원에게 털어놓은 고민은 우울감, 가정문제, 진로 등 다양하다.
◆위험한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라 불리는 모방 자살도 청소년 자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인들의 자살 방법이 인터넷 등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지면서 자살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탤런트 안재환이 연탄을 이용해 자살한 지 한 달여가 흐른 지난해 9월에는 부산 모 호텔 객실에서 고교생 이모(18)군이 동일한 방법으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가 2007년 전국 초·중·고교생 4575명을 대상으로 연예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청소년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5%가 ‘그렇다’고 답했다. 2007년 2월 탤런트 정다빈의 자살 후 한 달 동안 전국정신보건센터에 접수된 자살 관련 상담은 750여건으로 2006년 한해 상담건수(360건)의 배를 웃돌았다.
청소년들이 이처럼 유명인의 자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직 가치관이 확립돼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성보다 감성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안동현 한양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합리적인 판단보다 감정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며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청소년에게 심어주는 동시에 이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등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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