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을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자 아가멤논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을 희생시켜야만 배가 바다에 이는 폭풍이 멎고 병사들을 태운 배가 출항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 병사들 모두 알고 있는 터였다. 그가 만일 자신의 딸을 희생시키지 않고 전쟁을 포기한다면 그의 명예는 물론 그가 가진 위상도 완전한 추락을 가져올 것이 뻔한 일이었다.
고심 끝에 그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야심과 딸의 희생을 바꾸는 일이었다. 이제 아내와 딸을 설득하는 일이 고민이었다. 그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거짓으로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아내와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가 좋아할 내용이었다. 그의 딸이 평소에 연심을 품고 있던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를 내세우는 일이었다.
그는 아내와 딸에게 각각 편지를 썼다.
"내 충직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우리 딸 이피게니아와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기로 했소. 결혼식은 이곳 아울리스 항에 정박 중인 그리스 병선에서 화려하게 올릴 것이오. 그곳 미케네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번거로울 것이니, 그대는 나라를 잘 지키고 이피게니아만 사람이 가면 보내도록 하오."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의 편지를 받고 기뻐했다. 아킬레우스라면 그녀가 자랑할 만한 사윗감으로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아버지로부터 처음 편지를 받아보는 이피게니아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내 딸 이피게니아!
네가 원하는 대로 그리스 최고의 영웅이며 최고의 족장인 아킬레우스에게 너를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마침 아킬레우스가 트로이로 출병을 해야 하기에 출병하기 전에 결혼식을 선상에서 올리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딸과 그리스 최고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결혼식이라 최대한 훌륭한 예식을 치룰 예정이다.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다. 사람을 보낼 것이니 준비를 하고 따라 오도록 하여라."
이 편지를 받은 이피게니아는 마음이 설렜다. 흠모하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건장한 모습을 생각만 해도 기쁨이 넘쳤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그녀를 떨리게 했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그토록 흠모하던 영웅과 결혼을 한다는데 왜 심란한 걸까? 너무 행복해서, 갑작스러운 행복 때문일 거야.'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행복이어서 그럴 거라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피게니아는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아가멤논의 심복들을 따라 나섰다. 이들이 가는 길은 순탄했다. 길을 가면서 이피게니아는 앞으로 펼쳐질 자신의 삶을 상상하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딸을 희생할 제단을 마련하고 딸을 기다리고 있던 아가멤논은 딸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고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가멤논은 배에서 내려가서 친히 딸의 손을 잡았다. 그녀에게서 전해오는 체온을 느끼며 그는 흠칫 놀랐다. 이제 자기가 사랑하는 딸을 직접 저 세상으로 보내야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이피게니아는 기쁨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가멤논의 가슴은 더욱 쓰렸다.
아가멤논은 더는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고, 그녀의 손을 놓고 돌아서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다짜고짜 이피게니아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이에 놀란 이피게니아는 아가멤논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아버지, 아버지, 어떻게 된 일이에요. 왜 나를 이렇게…"
아가멤논은 말이 없었다. 다만 속으로 용서를 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야심을 위해 딸을 희생 시켜야하는 자신의 모습이 저주스러웠다.
이피게니아는 영문도 모른 채 제단으로 끌려갔다. 그녀가 외치는 애타는 아버지라는 부름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의 소란 떠는 소리, 끝없이 몰아치는 폭풍으로 항구는 시끄러웠다. 결혼식 대신에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열렸다. 아무런 힘도 없이 그녀는 죽음의 제단으로 끌려갔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진 제물 이피게니아는 무기력하게 죽음의 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아가멤논은 간절한 음성으로 출정을 허락해줄 것을 빌었으며, 이번 전쟁에서 트로이를 물리치고 천하를 제패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빌었다.
그가 제를 올리고 있는 동안 하늘은 더욱 캄캄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계로 변하면서 모여들었던 그리스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차례 강한 폭풍우가 제단을 휩싸며 돌았다. 놀라운 소용돌이가 그리스 병선들을 들었다 놓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폭풍이 멈추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는 고요해졌다. 병사들은 기쁨의 환호를 올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제단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피게니이도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아가멤논은 멍하니 딸이 누워있던 제단을 바라보았다.
아가멤논은 정신을 가다듬고 드디어 출항 명령을 내렸다. 북풍은 그쳤고, 그리스 배들은 고요한 바다 위로 출항했다. 100여척의 그리스 병선들은 사기충천하여 고요한 바다 위로 이끌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불세출의 영웅들은 얼마 후에 벌어질 트로이와의 싸움과 모험으로 설레고 있었다. 이제까지 단련해온 자신들의 무예실력을 그리스의 병사들과 트로이의 병사들 앞에서 펼쳐보일 것을 생가하며 들뜬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치른 몹쓸 희생은 아직 남아있었다. 누군가 한 사람의 영웅은 불행을 당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다. 즉 그리스의 영웅 중 제일 먼저 트로이 땅에 오르는 사람은 희생을 당해야한다는 예언이 있었던 것이다. 이피게니아가 그리스군의 출병을 할 수 있도록 희생을 당한 것처럼 트로이에 제일 먼저 상륙하는 사람은 죽어야할 운명이었다. 만일 그 누구도 상륙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치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전쟁에서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누가 먼저 트로이 땅에 오르려 할 것인가?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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