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소송과 명예훼손 형사재판이 함께 진행될 때 양 사건이 주목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지만 민사와 형사 사건의 성격에 차이가 있더라도 재판부에 제출된 기본 증거에 따른 사실 인정이 달라져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PD수첩을 상대로 낸 정정보도 청구소송의 항소심은 지난해 6월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과 미국인 여성 아레사 빈슨의 사인(死因), 한국인의 유전자형과 인간광우병 발병 위험성의 상관관계, 정부 협상팀의 태도 등 4가지에 대한 PD수첩의 보도가 허위였다고 판단했다.
방송에 나온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나 아레사 빈슨이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도 크지 않은데 PD수첩이 허위 보도를 했기 때문에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는 골자였다.
그러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제작진의 형사 재판에서는 앞서 고법이 정정보도 소송에서 허위로 판단한 사실들에 대해 `허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방송 내용의 전체적인 취지를 감안할 때 세부 보도가 허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
대법원 판례 역시 언론보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불법행위가 되는지를 판단할 때는 기사의 전체적 취지 속에서 기사의 객관적 내용과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 의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체적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21일 "명예훼손 형사 재판에서는 보도 당시의 허위성 인식 등을 따져 전체적인 보도 취지를 보는 것이고, 정정보도 청구 소송에서는 개개 사실의 진위를 따지는 것"이라며 "정정보도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명예훼손 유죄 판결이 나온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도의 세부적 사항들이 기사의 전체적인 인상을 결정짓는 변수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사 재판부와 형사 재판부에서 각 보도 내용의 허위 여부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혼란을 촉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형사재판에서의 처벌 필요성은 별개로 판단하더라도 취재 과정 등의 증거를 살펴서 내리는 보도 내용의 허위 여부에 대한 판단이 재판부마다 다른 평가를 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효원 서울대 교수는 "사실 판단에 따라 법적 평가를 하게 되는데 민사와 형사사건에서 법적 평가를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양쪽의) 사실 판단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수용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권의 독립도 법치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법치주의는 법적 안정성을 전제로 한다"며 "법관의 직업적 양심도 법치주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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