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서품을 받는 천주교 사제들과 동안거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스님들(왼쪽). 출가 성직자가 무소유 정신을 구현하고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성직자 노후복지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
현재 조계종 소속 승려 1만3800여명 중 65세 이상은 1700여명이다. 노후복지가 무방비 상태로 방치돼 있는 환경에서 이들은 승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계종 전체를 통틀어 일정 금액의 돈을 내고 입주할 수 있는 해인사 자비원, 요양원 겸 선방을 운영하고 있는 법계사를 제외하고는 원로 스님들의 거주공간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선운사에서 “노후가 보장돼야 불필요한 이권 다툼을 없애고 무소유 출가승의 정신을 지킬 수 있다”면서 노후수행관을 짓기로 했지만 턱도 없이 부족한 시설이다. 의료 혜택도 종단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경우 지원액이 20∼30%에 불과하다.
불교미래사회연구소가 2008년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승려들 65.4%가 노후 불안을 염려하고 있으며, 이 중 비구니 스님의 경우는 80% 이상이 노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노후 문제의 어려움은 주거 불안, 생활비 문제, 의료 진료 순이다. 노후대책이 없어서 발생하는 문제점으로는 수행에 전념 불가가 31.2%, 개인재산 축적 27.2%, 노스님 기피 20.5%, 사설사암 증가 14.7%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종단 차원에서 노후대책 마련이 되지 않고서는 무소유에 기반한 승가공동체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조계종 한명우 사서팀장은 “사회 다원화와 맞물려 스님 활동 폭도 넓어지면서 예전보다 문중 개념이 많이 약화되며 상좌들이 은사 스님을 챙기기도 어려워진 상황”이라면서 “수행만 잘해서는 노후가 저절로 해결되던 시대가 지난 만큼 자승 스님 임기 중 교구들과의 합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승가복지 제도의 기틀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천주교·원불교 “성직자의 노후 보장은 매우 정의로운 일”=불교계가 복지 모델로 삼는 천주교는 은퇴 사제를 ‘원로 사목자’라고 표현하며 예우한다. 성당 사목이나 관리직에서는 물러나더라도 모든 사제가 미사봉헌 등을 계속하기 때문이다. 원로 사목자에게는 매달 100만원이 넘는 미사예물이 급여 개념으로 나가며 만 65세부터 교구별로 이들을 위한 주거 공간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별칭인 ‘혜화동 할아버지’도 추기경이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내 주교관에 머무르면서 생긴 것이다. 현재 서울대교구의 원로 사제는 40여명. 혜화동 주교관 외에 삼선동, 수유리 등의 공동 사제관에 나뉘어 살고 있다. 춘천교구의 경우는 지난해 ‘선목 사제관’이라는 은퇴 사제관을 건립했다. 교구별로 아파트를 구입해 개별적으로 사제에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원불교 역시 모든 교단 내 성직자 100%에 적용되는 노후복지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 20년 이상 교역자는 퇴임 후 동산 원로 수도원 등 퇴임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밖에 매월 40만원의 생활비와 24만원의 연금 등을 지급받으며 의료비 일체도 제공받는다.
하지만 이들 종교 역시 매년 은퇴자가 늘면서 주거시설 확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히 매년 20∼30명씩 사제를 배출했던 한국 천주교는 1970∼80년대 매년 그 열 배 수준으로 사제가 폭증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시설이 포화 시점에 달하는 20∼30년 뒤를 대비해야 한다는 데 한국 천주교의 고민이 있다.
천주교 춘천교구 사목국장 신호철 신부는 “오랜 세월 가톨릭 교회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생을 사심 없이 일해왔다. 노후를 맞은 성직자가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교회가 보장해주는 건 매우 정의로운 일”이라면서 “하지만 요양원처럼 원로 사제 전용 수도원을 짓기보다는 원로와 현직의 젊은 사제가 더불어 생활하며 경험과 도움을 나누는 공동사제관의 형태로 나아가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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