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추가도발 관건… 역할 주목 빌 리처드슨 미 뉴멕시코 주지사가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를 봉합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난 16일 방북한 리처드슨 주지사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등과 만나 북한 측으로부터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리처드슨 주지사의 향후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리처드슨 주지사를 동행 취재하고 있는 CNN의 울프 블리처 앵커는 19일(현지시간) 북한이 추방했던 IAEA 핵 사찰단의 복귀를 허용하고 우라늄 농축을 위한 핵 연료봉을 한국으로 반출하는 것과 남북한과 미국이 참여하는 군사위원회와 군사핫라인 구축에 대해서도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2008년 말 중단됐던 북핵 6자회담이 재개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6자회담 중단과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발표하고 IAEA 사찰단을 추방했다. 미국은 도발 중단과 함께 ▲역내 긴장 완화 ▲남북 관계 개선 ▲2005년 북핵 9·19공동성명에 따른 적극적 비핵화 조치 ▲대북 유엔 안보리 결의안 이행 등을 6자회담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IAEA 사찰단 복귀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핵심 조치이다.
관건은 북한의 추가 도발 여부다. 북한이 20일 오후 시작된 한국군의 해상 사격훈련에 맞서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 역내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관계는 당분간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긴장 완화와 북핵 해결을 위해 방북했던 리처드슨 주지사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서지 않고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약속했다는 IAEA 사찰단 복귀 등을 이행한다면 한반도 위기 국면은 급속히 6자회담 재개를 통한 긴장 완화 국면으로 바뀔 수 있다.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은 여러 면에서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미 행정부와는 관계없는 개인적 차원의 방북이었다.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미북 대치 구도를 대화 구도로 되돌리려 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북한은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IAEA 사찰단 복귀와 원자로 해체 등을 약속하며 미북 협상을 이끌어냈고 이번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을 통해서도 IAEA 사찰단 복귀 등을 미북 협상의 유인책으로 제시했다. CNN을 통해 방북 성과를 홍보하며 여론을 움직인 대목도 흡사하다.
하지만 리처드슨 주지사 방북은 기존의 북핵 위기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 위기가 중첩돼 있어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보다 상황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과의 담판을 통해 얻어낸 성과물로 빌 클린턴 행정부와 김영삼 정부를 움직여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다. 공은 또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coolm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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