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몇 곳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스포티지R T-GDI가 예상을 뛰어넘는 성능으로 마니아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은 '기아 스포티지'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신을 추월했다고 게시판을 통해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스포티지R T-GDI가 과연 정말 그렇게 대단한 차인지, 마니아들에게 검증을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시승차를 몰고간 곳은 한 스포츠카 동호회의 심야 정기모임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이곳에 모인 차들은 흡기와 배기(머플러 등) 튜닝은 물론 ECU도 개조를 하는 등, 차들마다 수백만원~수천만원의 튜닝이 돼 있었다. 일부 차종은 500마력이 넘는 출력을 자랑해 '레이싱 머신'이라 불릴만 해 보였다.
◆ "내 언젠간 이런 날 올 줄 알았어"
비워진 공도에서 스포츠카와 스포티지 T-GDI를 비교 주행 해보기로 했다. 정지 출발을 하면 운전자의 기량에 따라 가속성능의 차이가 커질까 우려가 돼서, 차가 달리는 동안 가속을 시작하는 '롤링 스타트'를 하기로 했다.
함께 달린 차들은 2대였는데, 한대는 2.0리터 튜닝차였고, 한대는 3.8리터 튜닝차였다. 이들은 ECU 튜닝 외에도 배기음과 흡기음이 어마어마했다. 저음으로 깔리는 배기음은 둘째로 하더라도 가속페달을 밟을 때마다 "쉬이익~쉬이익~"하는 고음이 울려퍼져서 보는 사람들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차들은 시속 60km 가량으로 달리다 출발 사인을 받고 일제히 가속페달을 밟았다. 2대의 스포츠카가 내는 소음이 어마어마 했다.
둥글둥글한 스포티지의 겉모양을 보고 반신반의했던, 그리고 스포츠카를 탄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운전자들은 상기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한 운전자는 "내 언젠간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한명은 "이제 국산 SUV에도 따이는(드래그에서 뒤쳐짐)거냐"라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전륜구동이어서 정지후 출발에는 어떨지 몰라도 달리면서 출발하는 롤링 스타트에선 스포티지 출력이 더 세고(261마력) 무게는 더 가벼워서(1485kg.2륜구동) 어지간한 2.0리터 차로 스포티지를 이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교적 덩치가 크다 보니 공기의 반발력이 느껴지는 듯 했다. 속도에 비례해 풍절음이 상당히 증가했다. 만약 시속 200km를 넘어 계속 달려본다면 공기 저항이 적은 스포츠카를 이기기는 어려울 듯 했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떼었다 하면서 자세히 들어보니 여느 터보차에서 나는 슈욱, 슈욱 하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린다. 최고속도는 계기반으로 별 무리 없이 210km를 넘는다. 기세로 보면 이 속도를 훌쩍 넘길 듯도 하지만, 제조사는 굳이 이 속도에 제한을 걸어뒀다. 강한 엔진으로 순정 타이어와 여러 기계장치의 한계를 넘을까 우려해서다.
말 그대로 스포츠카를 잡는 스포티지다. 크기도 크고 둥글둥글하지만 치고 나가는 느낌은 찌릿하다. 스포티지 T-GDI는 가격도 2075만원(자동변속기 기준)부터 시작한다.
◆ "기아차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자동변속기를 장착하고도 2075만원이라는 가격이 책정된데는 정말 놀랄 수 밖에 없다. 디젤모델보다 오히려 130만원가량 저렴한데다, T-GDI 전용 외관옵션 등을 기본 장착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262마력을 내는 차 중 2천만원대 초반인 차는 세계 어디도 없다. 아마 기아차 측에서 이 차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 것 같다.
가솔린 차임에도 토크 37.4kg.m를 내는 점도 매력적이다. 흔히 디젤엔진의 토크가 가솔린 엔진에 비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지간한 디젤차의 토크를 넘는 가솔린차다.
기아차는 출력이 너무 높은 것이 우려가 됐는지 이 차에 ESP(전자자세제어장치)를 끄더라도 TCS(토크제한장치)가 꺼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일단 차가 미끄러지면 즉시 엔진 출력이 낮춰져 버려 스포츠 주행을 기대하는 운전자들은 약간 실망할 수도 있겠다.
가솔린 3.0리터급 성능을 갖추고도 연비가 11km/l를 넘고, 세금도 2.0리터 차량과 동일하게 낸다. 시내에서 천천히 주행해보니 연비는 15km/l도 넘는다. 하지만 이렇게 쏜살같이 달리는 차를 타면 천천히 몰고 다닐 마음을 먹기 어렵기 때문에 공인연비만 보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서스펜션의 단단함은 이 정도면 합격점이다. 국산차 서스펜션과 핸들이 어느새 이렇게 단단하게 변했나 싶다. 하지만 국산차 타이어와 브레이크는 항상 조금 아쉽다. 특히 브레이크 디스크도 조금만 더 크고 배력장치도 넉넉했으면 좋겠다. 급브레이크를 연달아 두번 밟으면 딱딱해지는 느낌이 쉽게 든다.
기아차는 이 차의 성격 때문인지 본래 272마력이던 엔진의 출력을 굳이 261마력으로 낮춰 봉인을 해놨다. 아마 ECU 튜닝 등으로 봉인을 풀고 타겠다고 나서는 젊은이들도 많을 듯 하다. 강력해진 엔진에 맞게 타이어나 브레이크도 함께 튜닝하는게 좋겠다.
그동안 '국산차'라면 심심한 차들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그런 차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제조사의 변명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제조사들이 그런 차만 내놨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몰랐던게 아닐까. 이 차를 시작으로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 그리고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변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김한용 기자 whynot@top-rider.com <보이는 자동차 미디어, 탑라이더(www.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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