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산 안료 들여와 실험중… “국보1호 자긍심 훼손” 반론
‘무너져 내린 민족 자긍심’은 온전히 세워질 수 있을까. 영욕의 610년 세월을 지켜오다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 복원공사가 한창인 숭례문은 일정대로라면 내년 12월 웅장한 자태를 다시 세상에 드러낸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적인 건축미를 가장 잘 보여준다는 단청 기술에서다. 전통방식의 천연안료와 아교 기술이 끊긴 탓이다.
숭례문에 전통방식의 단청을 입힐 수 있을지를 놓고 전문가들끼리 갑론을박하고 있다. 일부는 “전통방식 단청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부는 “국보 1호로 실험을 하려고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6일 문화재청과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에 따르면 국보 1호 위상에 걸맞게 숭례문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전통 기법과 전통 도구’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최고 장인들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석재, 목재, 기와, 철물 등이 쓰인다.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더할 단청 작업은 내년 상반기 숭례문 누각이 모두 올라가면 시작된다. 안료로는 돌가루 성분의 천연안료가, 교착제로는 동물 뼈나 가죽 등을 고아 만든 아교가 쓰일 예정이다.
문제는 단청 기술자 어느 누구도 천연안료와 아교만을 써서 대형 공사를 해 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1900년대 초부터 값싸고 쓰기 편한 서구의 화학안료가 들어오면서 석채를 밀어내고 옛 기술은 전승되지 못한 채 끊겨버렸다. 지금은 탱화나 동양화에만 일부 쓰일 뿐이다. 1963년 숭례문 단청 때 천연안료를 썼다가 금세 변색되는 바람에 7년 만에 다시 단청을 한 적도 있다.
화학안료는 명도가 높고 색이 가벼워 깊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천연안료는 색이 은은하면서도 오래 가지만 가격이 비싸다. 화학안료와 천연안료의 장단점을 보완해 대체 도료를 개발하는 과정이 절실했으나 화학안료를 무분별하게 도입했다는 지적이다.
서울 청계천 주변 등에 있던 아교 공장들도 공해산업이라는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사라지면서 아크릴에멀션이 교착제로 쓰이고 있다.
문화재청은 외국산 천연안료 표본을 들여와 3월부터 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안료 특성과 내구성 등을 실험하고 있다. 천연안료를 대량 확보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 인도 현지 생산업체 실사도 병행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 홍창원(56)씨는 “천연안료 사용에 문제가 없느냐”는 취재팀 질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실험 결과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우방(70) 전 경주박물관장은 “단청장들이 단청을 잘 하지만 천연안료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자칫 최고 문화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화재 보존전문가 이상현씨는 “숭례문 단청에 문제의식을 지닌 전문가가 많은 만큼 이제라도 공론화해서 모두가 이해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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