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책동네 산책] 희망이 없다면 분노도 없다

입력 : 2011-07-16 00:04:34 수정 : 2011-07-16 00:04:3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최근 번역된 93세의 레지스탕스 출신 프랑스인의 ‘분노하라’의 반향이 작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당연한 관심사이고, 우리가 선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밖으로부터 수입된 것은, 보편적 의미를 지닌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삶의 맥락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그치는 수가 많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지만, ‘지금 한국에서의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좀체 회자되지 않는 기이한 ‘정의 열풍’이 일렁인다. 같은 이치로 ‘분노 열풍’ 역시 맥락 없는 유행어로 그치지 않기를 소망한다.

강경미 도서출판 꾸리에 대표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는 요즘 ‘분노를 잃어버린’ 젊은 20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떨림이 전해지지만, 어떤 목소리에는 당위만 요란하여 공허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른바 과거 민주화 세대는 오늘의 20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절망적인 상황에 내몰렸는지, 자신들 세대가 이러한 상황에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386세대가 20대들을 향해 너희들은 왜 대학을 안 뛰쳐나오냐고 일갈하는 모습은 보기가 참 불편하다. 이들이 다시 자기성찰을 생략한 채 ‘분노’라는 칼을, 끝도 없는 경쟁의 트랙 위에서 이미 지쳐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아차릴 도리없는, 어린 후배들에게 함부로 휘두르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천성산 터널공사를 가로막아 나라에 2조5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입혔다고 욕먹은 여린 비구니의 육신을 밀치고 4대강으로 치달아간 시간을 생각하면, 언제부터 이 사회가 한 인간의 생명을 건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휩싸인다. 그 스님은 줄곧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지금 김진숙씨가 머무는 영도조선소 크레인 위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 중 어디가 더 위험할까요?”라고도 물었다. 문득 나는 바로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희망이 없다면, 분노도 없다.

강경미 도서출판 꾸리에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민주 '청순 매력'
  • 김민주 '청순 매력'
  • 노윤서 '상큼한 미소'
  • 빌리 츠키 '과즙미 폭발'
  • 임지연 '시크한 가을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