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셋방살이’ 옛말…"소유보단 주거" 새 트렌드
‘남의 집 살이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주택의 가치를 소유보다 주거에서 찾는다. 자녀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면, 늘 새집에서 살고 싶다면 언제든 내 집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집을 일종의 안전장치로 여긴다. 노후를 위한 대책이면서 집값이 더 오를 경우에 대비한 투자라고도 말한다.
전세살이 부끄럽지 않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둔 주부 이모(46)씨는 최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자신의 집을 세놓고 서울 방배동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전셋값만 5억원이 넘지만 전세살이를 결심한 이유는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이씨는 “학원 등이 밀집한 강남에서 교육하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자녀 교육 문제로 셋집살이를 하는 하우스 노마드의 경우 기본적으로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하우스 노마드 가운데 상당수는 자녀 교육 문제로 남의 집 살이를 하는 경우”라며 “가장이 중심이 됐던 과거 가족의 생활 패턴이 자녀 중심으로 변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의 집 살이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도 이 같은 현상을 낳는 원인이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예전엔 대부분이 자기 집을 소유하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주택을 소유보다 거주 대상으로 인식해 전·월세 등 주택 임대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도 “과거 전세살이는 고달픔의 상징으로 인식됐지만 그것을 압도할 수 있는 교육, 주거환경 등의 영향으로 상황이 변했다”면서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실제 소유보다는 문화 환경과 같은 주위 생활 조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자들의 떠돌이 생활?
자신의 집을 두고 교육여건 등 목적에 따라 주거지를 옮겨 다니는 하우스 노마드족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어쩔 수 없이 값싼 임대주택을 찾아 나서야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이들에게는 ‘내 집’이라는 일종의 보호막이 있기 때문이다.
변창흠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을 한 채 가지고 있는데도 전세에 사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학군이나 주거환경이 좋은 곳은 주택가격이 비싸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전세로라도 들어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주택 소유 방식을 보면 부동산 가격이 높은 곳과 살기 좋은 곳은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부동산 가격이 높아질 만한 곳엔 자기 소유 집을 두고 정작 자신은 거주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동한 결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급속한 침체를 하우스 노마드 증가의 원인으로 꼽는 경우도 있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2∼3년간 이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상당수는 자신의 집을 팔고 이동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자신의 집을 두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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